어느 시대나 사회를 막론하고 남성은 이러 이러해야 하고 여성은 이러 저러해야 한다는 성 역할에 대한 고정 관념들이 있어 왔다. 그러나 이런 고정 관념화된 역할을 수용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자칫 한 성의 완전한 잠재력을 실현시키는 것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독립적이다』『모험적이다』『주도적이다』라는 속성을 예로 든다면 이러한 속성을 남성이 가지고 있다면 이는 건강한 남성이라는 표현이요, 건강한 성인과 동의어로 사용될 수 있지만 이러한 속성을 여성이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미국에서조차 부적응으로 판단될 소지가 있을 정도로 여성에 대한 편파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성별 고정관념은 때로는 많은 고통스런 결과를 낳게 된다. 그래서 어떤 심리학자는 여성은 「성공을 회피하려는 동기」를 발달시킨다고까지 주장한다. 왜냐하면 남자에게 있어서 성공은 남성성과 함께 양립될 수 있는 개념이지만 여성의 경우 성공은 갈등을 일으키는 혼합된 축복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직업적 성공은 개인적 영역에서의 실패를 의미할 수도 있고, 직업에서의 성공에 요구되는 특질과 여자로서의 성공에 요구되는 특질은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사에 의하면 남성이 어느 분야에서 성공했다고 하면 대개가 긍정적 반응을 보이는 반면 여성의 성공에 대한 반응은 부정적으로 나타나고, 이러한 잠재된 고정관념이 여성으로 하여금 무의식적으로 성공을 회피하게 하는 동기를 유발하게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여성운동 분야와 심리학에서는 여성의 자기 실현을 방해하는 고정관념화 된 성 역할의 영속화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자기 실현을 방해하는 이런 고정관념들은 성 역할 분야에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여러 분야에 그대로 남아 있고 계속해서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자기실현이란 이러한 고정관념들에 대한 도전과 극복의 과정일 것이다.
오늘 우리는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의 이야기를 통해 고정 관념화된 성 역할에 도전하는 한 신앙인의 모습을 대하게 된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도중 한마을에 들려 마리아와 마르타 자매의 환대를 받게 되는데, 이 두 자매는 다른 방법으로 예수님을 맞이한다. 언니인 마르타는 접대와 시중드는 일에 경황이 없고 동생인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들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다. 그러자 시중 드는 일에 경황이 없던 마르타는 예수님께 불평을 하게 되고 예수님은 마르타의 불평도 인정하지만, 그러나 실상 필요한 것은 한가지 뿐이요, 마리아가 택한 몫이 참 좋은 몫이요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이 말씀은 예수님을 맞아들임에 있어서는 음식접대와 같은 「외적인 행위」가 아니라 「말씀의 들음」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재확인 시켜주는 말씀이지만 예수님 시대 여성이 사회에서 가지는 위치를 생각한다면 오늘 마리아가 택한 몫은 '말씀의 들음'이라는 소중한 진리 외에도 여성 해방사의 시작이라는 대 사회적인 의미도 함께 볼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 시대의 여성은 사회적으로 매우 낮게 취급되었다. 남성과 여성은 같은 인간이었지만 동등한 대접 대신 동물과 사람 사이의 중간 정도로 취급되었고, 때로는 물건처럼 계약에 의하여 팔릴 수도 있고, 종들과 거의 동등한 취급을 받고 있던 것이 당시 여성의 위치였다.
히브리어 단어에 「경건한 사람」「의로운 사람」「거룩한 사람」이라는 단어만 여성형이 없다는 점만 보아도 여성을 어떤 존재로 보았는지 헤아려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자기 딸에게 토라를 가르치는 사람은 그녀에게 방종하라고 가르치는 셈이요, 여자에게 율법을 넘겨주느니 차라리 그 율법을 불태워 버리는 편이 낫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여성교육을 백안시하였고, 건전한 남성은 여자를 만나서도 안되고 길거리에서 말을 나누어서도 안 되는 존재로 보았다.
이런 시대상황 안에서 마리아가 선택한 몫 「주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었다」는 사실은 너무나 놀라운 일이다. 왜냐하면 이 자세는 스승의 가르침을 배우기 위하여 제자들이 가지는 자세로 마리아가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의 시작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자세가 상징하는 바는 여성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당시 여성에게 씌워진 굴레에 대한 도전의 모든 행위'를 상징할 것이다. 마리아의 이러한 모습이 그녀로 하여금 예수의 제자됨의 길을 걸을 수 있게 하였고, 이런 여성들의 용기가 십자가 길의 마지막과 부활의 첫새벽의 영광을 남성이 아닌 여성들이 차지할 수 있게 하였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사회도 여전히 여러 가지 굴레들이 인간의 자기실현과 구원의 길을 방해하고 있다. 그러기에 여성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굴레에 얽매이지 않고 그 시대를 초월했던 마리아의 그 행위의 교훈이 오늘날 더욱더 그리워지게 되는 것이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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