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교구 관리국장 발령은 말그대로 전격적인 것이었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진 이 인사가 굉장한 부담이었지만 『아직 초창기인 교구의 어려움을 함께 고민하고 짐을 나누어지자』는 동기생 황주교의 절박한 심정이 담긴 뜻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관리국장에 부임해 오면서 나는 곧바로 골치아픈 일들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첫 번째가 성모여고 부지 매각 사태였다. 성모여고 부지는 이미 전임 교구장 시절에 매각이 성사된 상황이었고 내가 와서 보니 그 계약 조건이라는 것이 매우 불리하게 되어 있었다.
어쨋든 이 모든 조건은 이미 계약으로 성사된 단계여서 뒤늦은 후회는 소용이 없었다. 관리국장 부임 후 얼마되지 않아 무허가 건물에 살던 주민들이 철거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교구장인 황주교와 상서국장 두봉주교(전 안동교구장)는 어딜 갔는지 행방이 묘연했다. 주민 대표가 협상을 제의해온다는 말을 듣고 나는 『그들이 처음부터 단체로 이주해와서 살게 된 것이 아닌 만큼 주민 대표란 것을 인정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여러 경로를 통해 철거의 합법성을 확인했지만 일방적으로 그들을 몰아내는 것은 교회가 취할 방법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소위 주민 대표라는 이들을 모아놓고 나는 『이사비용으로 10만원을 지불하겠다』라고 통보했다. 그리곤 10만원권 채권을 일일이 끊어줬다. 성모여고 부지 매각대금이 은행에 입금되고 있던 상태라 나는 은행측에 이 사실을 알리고 『한사람이라도 관리국장의 최종 승인이 없으면 지불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주교좌성당을 짓든가 아니면 병원을 설립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성모여고 부지 매각사태는 이렇게 일단락 되었다. 물론 학교법인 설립과 교장취임 승인 문제도 여러 경로의 지인들을 통해 해결해주었다.
관리국장으로 4년동안 재임하면서 또 한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교회장부를 통일하고 기초를 놓은 일이다.
관리국장에 부임하면서 나는 사무인계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가장 큰 이유는 제대로 된 관리장부가 없었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마음을 억누르며 전 담당자에게 한달간의 시간을 주고 인계 가능한 장부를 만들어오라고 했으나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도(道) 관리국에 근무하던 지인(知人)의 도움으로 관리대장(장부)을 새로 만들었다. 이에 기초해서 본당 관리대장도 통일시켰다. 문제는 사목자들부터 새로 완성된 대장 사용을 어려워한 데 있었다.
사실 그동안 제대로 된 장부 하나 없었고, 그에 따라 교구와 본당의 재정운용은 말그대로 주먹구구식이었음을 감안한다면 무리도 아니었다. 쉬운방법에 길들여진 사목자들이 까다롭고 귀찮은 새 대장 사용을 반가워할리 만무했다.
특히 프랑스인 신부가 사목하는 본당에서 문제가 심각했다. 그들은 마지못해 따라했고, 일부 한국인 신부들도 반발하며 간소화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애써 준비한 양식을 활용도 못해보고 중단한다면 차라리 하지 않은 것 보다 못하지 않은가. 사목자들과 신자들을 설득하고 교육시키면서 점차 개선되어갔다. 대전교구의 관리대장 등 교회장부는 이후 다른 교구에서도 많이 원용했다.
앞서 말한 성모여고 부지 매각사태를 해결하던 중 일화를 소개할까 한다. 학교 부지에 자기 집의 절반이 물려있는 사람이 있었다. 유독 이 사람만이 보상을 요구하며 애를 먹였다. 확인한 결과 돈이 궁한 사람도 아니었고 오히려 형편이 넉넉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지금 우리가 하려는 일은 인간적으로 돈벌이 하려는게 아니오. 하느님의 사업을 하려는 것이오. 당신이 그렇게 욕심을 부리고 방해한다면 하늘에서도 당신의 그 욕심을 벌할 것이오』라고.
콧방귀를 뀌며 돌아간 그 사람이 며칠 뒤 허급지급 나를 찾아왔다. 그리곤 『그때 신부님 말을 들었어야 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사연은 이러했다.
그날 이후 며칠 지나지 않아서 골목길에서 차를 후진시키다 그만 사람을 치어 죽게 만들었다. 그 사건을 해결하느라 살던 집과 가진 것을 모두 날리고 빈털털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자신은 이 사건이 그때 욕심을 부린데 대한 하늘의 벌이라는 생각이 들어 늦게나마 용서를 청하러 왔다고 했다.
물론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일을 겪으면서 어리석은 우리를 가르치시는 하느님의 숨은 뜻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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