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에서 가장 좋다는 메디컬 센터에서 마지막 희망이 꺾였을 때의 심정은 암담함 그것이었다. 더 기댈 데가 없다는 좌절감은 나를 참담하게 하였다. 그로 인해 1년여 동안 신앙 생활을 접었다. 나는 이때 하느님에게서 떠나는 것이 냉담임을 처음 알았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 할머니 수녀님을 비롯한 여러분들이 나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나는 다시 하느님 품에 안겼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탓하시지 않고 오히려 위로해 주셨다. 여전히 어렵게 투병하는 나에게 오직 하느님만이 영혼의 쉼터였다.
해가 바뀌어 1966년이 되었다. 이 해는 나를 새롭게 일깨우는 해였다. 1월에는 내 시문학의 산실이 되어 준 「흑조 시인회」가 창설되었고, 나는 창립 회원으로 참여했다. 「흑조 시인회」는 목포 지역 20대 시인들이 만든 단체로서, 내가 참여한 것은 이 무렵 시들해 있던 문학 열정에 불을 지펴 주었다. 그뿐 아니라 나의 수준을 가늠케 하고 분발하는 촉매제가 되었다. 나의 동년배들인 동인들의 작품을 대한 나는 자신의 작품 내용이 빈약함을 느꼈고, 이들을 따라잡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이와 같은 독학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많은 향상을 주었다. 이 동인 활동은 나에게 삶의 기쁨이었고, 또한 하느님께 향하는 내 소망의 표출이었다. 오늘날 「흑조 시인회」출신 시인들이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처에서 활약하고 있고, 나 또한 그 반열에 들고 있음은 이 단체를 통해 오랫동안 시문학에 충실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66년에 있었던 또 하나의 사건은 레지오 마리애 행동단원이 된 일이었다. 그 해 6월 목포 경동 성당에서 주일 미사 참례를 마치고 나온 나에게 천 노엘 주임신부님께서 다정하게 물었다. 『박 모세 씨, 우리 본당에 아주 좋은 단체가 있는데, 한 번 참석치 않겠어요?』나는 귀가 솔깃했다. 영세 이후 나에게 교회 단체 이야기를 한 분이 천 신부님이 처음인데다 「아주 좋은 단체」라는 말이 호기심을 갖게 하였다. 그래서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화요일 저녁 여덟시에 본당 회의실에 갔다. 그 곳에서 참으로 엄숙한 분위기를 보았다. 바로 레지오 마리애 「죄인의 의탁」주회합이 열렸던 것이다. 이날 나는 흔쾌히 예비입단했고, 3개월 후에는 선서를 하고 정단원이 되었다.
이 두 가지 사건은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증좌였다. 나로 하여금 성화의 삶을 살게 하시고 당신 영광을 위한 도구로 쓰시기 위함이었다. 내 인생에 있어서 레지오 마리애 입단과 문학은 그만큼 큰 비중을 가졌다. 레지오 마리애는 내가 가졌던 신앙관을 일거에 무너뜨렸다. 레지오에 입단하기 전에는 그저 하느님께 완쾌를 주십사 기도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나만을 위한 신앙에서 이웃을 위한 신앙으로, 주일 미사 참례로 만족하던 신앙에서 행동을 통한 신앙으로 나의 의식을 바꾸어 준 것이 레지오 마리애였다. 마음의 눈이 번쩍 떠진 나는 열심히 활동했다. 주회합에서 활동 배당을 받아 단원들과 함께 가정 방문을 하였고, 얼마 후에는 소년 쁘레시디움 단장으로 파견되었으며, 교리교사로서 학생 교리 지도도 하였다. 그리고 주일에는 미사 해설을 하였으니, 이 모든 활동이 매주 계속되었다. 또 1967년에는 목포지구 소년 꾸리아 부단장에 선출되고 그 다음해에는 단장에 선출되어 더욱 분주해졌다. 그야말로 이 시기는 하느님 자녀로서 살맛나는 나날이었다.
그러한즉 건강은 더욱 악화되었다. 치료약을 쓰지 못한 채 전에 없이 다리를 혹사하다 보니 고름이 더 많이 나오고 새로 염증이 몰려와 환부가 늘어났다. 레지오 활동을 통해 영혼이 날로 약동하는 반면에, 육신은 갈가리 찢기는 고통이 엄습했다. 그래서 으레 일주일 중 사나흘은 신음 속에 몸부림쳤으며, 어느때는 고통중에 미사 참례하거나 주회합에 나갔다. 이렇듯 나는 오직 레지오 단원으로 살기를 원했다. 레지오 마리애만이 신앙의 전부라고 여길 정도였다.
이때 나에게는 이 세상에서의 삶보다 천국에서의 영복이 더욱 절실했다. 따라서 레지오 단원으로 충실하게 살다가 영예롭게 죽기를 바랐다. 그리고 주님께서 『너는 이승에서 어떻게 살았느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레지오 단원으로서 열심히 활동했습니다』라고 말하리라 결심했다. 내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활동은 바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공로가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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