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둘이나 셋이 모이면 함께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우리 나라 사람들은 고스톱을 친다. 때로는 술을 한 잔 걸친 후 노래방을 찾아 목청껏 소리를 질러댄다. 남자들끼리 술자리에 모인 경우 2차, 3차 회를 거듭한 뒤 여성이 등장하는 술집을 찾는 것도 다반사다.
정보사회라 일컬어지는 요즘에는 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풍속도들이 등장했다.
점심시간 한 기업체 사무실. 직원 몇이 점심도 잊은 채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다. 모니터 화면에 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고스톱판이다. 피박, 광박 등 실제와 규칙이 똑같고 '살아 숨쉬는' 상대방도 있어 진짜와 다름없다. 남들이 보면 열심히 일하는 걸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
인터넷을 매개로 전국이 고스톱판이 됐다. 통계에 따르면 인터넷 고스톱을 서비스하는 업체 10여개에 회원만 무려 170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현상에 대해 정보화사회의 부작용이라 부르는 것은 타당성이 별로 없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 사회 자체가 그런 놀이문화에 깊게 젖어 있기 때문이다. 아니 놀이문화라 할 만한 그런 문화 현상 자체가 너무나 빈약하기 때문이다.
놀이는 있지만 놀이문화는 없다
현대인들에게 어떤 의미에서는 전에 비해 더욱 풍부하고 다양한 놀이의 방법이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저 일만 해야 했던 과거 경제개발시대를 거쳐 어느 정도 여유 있는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오늘날 이른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발달은 우리가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오락물들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오락과 놀이는 있지만 참된 의미에서의 놀이 문화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언제부터인지 그 기원이 정확하게 밝혀지진 않았지만 이미 우리 일상 생활에 깊숙이 자리잡은 화투는 놀이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시대적인 풍자까지 겸하면서 다양하게 행해지는 고스톱을 빼고는 한국인의 놀이에 대해서 논할 수 없다. 오가는 버스나 승용차 안, 해수욕장의 텐트 속에서도 고스톱과 카드놀이가 빠지지 않으며 초상이 나면 상주는 으레 화투나 카드를 준비한다.
놀이문화의 부재는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들을 보면 성인들이 여가를 보내는 방법들 중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나는 것은 자는 것, 고스톱, 전자오락, 당구, 빠징고, 술 먹고 노래방 가기 등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성인의 놀이들은 대부분 지나치게 소비적이고 향락적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어른들의 놀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타락과 퇴폐 풍조이다. 우리 나라의 음주문화가 지니고 있는 퇴폐, 향락적인 놀이문화는 종종 고질적인 사회 문제로 지적되기도 한다. 한때 원조교제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던 미성년자 매매춘은 특히 인터넷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통해 더 확산되기도 했다.
놀이문화의 부재는 어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인가?
학교가 파한 뒤 책가방을 집어던지고 문밖으로 뛰어나간 아이는 동무 집을 찾아가 대문을 두드리며 외친다. 『친구야 - 노올자~』 말끝을 길게 늘이며 부르는 친구의 외침에 부리나케 달려나온 아이는 이번에는 그 동무의 손을 붙잡고 또 다른 집으로 찾아가거나 동네 마당으로 「집결(?)」한다. 그러면 그곳에는 이미 여러 명의 아이들이 모여 어떤 놀이를 할지 의논하고 있게 마련이다. 해가 뉘웃뉘웃 기울때까지 아이들은 그렇게 이런 저런 놀이를 하고 흙투성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간다.
누구나 기억함직한 어린 시절의 풍경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아이들은 이런 풍경에 익숙치 않다. 도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놀이 중 하나인 「술래잡기」를 알지 못하는 어린이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술래잡기 할 사람 여기 붙어라』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면 아이들은 거기에 함께 손가락을 걸면서 동조했다. 하지만 이제 이런 놀이들은 거의 사라졌고 그 자리를 TV와 비디오, 전자오락 기기, 컴퓨터, 각종 모형 장난감, 과학 기기 등이 차지했다. 아이들은 이제 친구들과 함께 자연 속에서 몸을 부딪히며 뛰어 노는 것보다는 컴퓨터 앞에서 스타크래프트나 포트리스, 디아블로 같은 컴퓨터 게임에 빠져있다.
청소년들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머리와 몸은 커져가면서 욕구는 더욱 늘어나지만 무한경쟁의 틈바구니에서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입시를 위해 달려가야 하는 청소년들에게 놀이라는 것은 사치이며 방종으로 취급되곤 한다. 이런 청소년들에게 있어서 인터넷과 컴퓨터가 가장 선호할 수 있는 놀이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놀이 문화의 변천
그러면 과연 우리 나라의 놀이 문화는 시대를 거쳐오며 어떻게 변화해왔을까.
전쟁을 지나온 50년대 이후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놀이란 없었다. 그저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쳐야 했던 시기에 놀이, 혹은 여가, 휴식이라는 것은 사치스러운 것이었다. 경제 개발이 본격화된 6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미국문화의 영향이 일상화되면서 라디오, TV 등이 개국되고 이는 신기한 구경거리이자 특별한 오락활동으로 자리잡았다. 마을에 한 대 잇는 TV 앞에 모여 앉아 함께 웃고 울며 TV를 보는 모습은 당시에 흔한 풍경이었다.
70년대에 들어오면서 절대빈곤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본격적으로 여가를 즐기기 시작했고 관광이라는 오락이 사람들의 많은 관심사가 됐다. 단체로 온천이나 유원지 등을 놀러 다니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80년대 석유 파동과 국내 정치 불안 등으로 위축됐던 사람들은 이후 가속화된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이른바 레저와 여가활동에 활발하게 나섰다. 82년 해외여행 자유화는 여가활동의 무대를 세계로 확대시켰다.
90년대 들어 우리나라 최고의 히트상품인 노래방이 등장했다. 91년 부산에서 처음 선을 보인 노래방은 전국적으로 확산돼 아이부터 어른까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즐기는 놀이가 됐다. 지금은 어느 곳을 가든지 노래방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
정보화가 진행되고 컴퓨터가 일반화되면서 오락실이 어린이, 청소년들의 전유물이었던 시대가 지나가고 '인터넷 게임방'의 시대가 이르러 우리나라의 최대 경제 위기였던 IMF 속에서도 엄청난 호황을 누렸다. 청소년에서 시작된 게임방의 열기는 이제 30~40대 직장인들에게까지 퍼져 점심시간, 일과 후 삼삼오오 게임방으로 향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올바른 놀이문화를 위해
사회적인 여건이 개선되고 생활 수준이 향상됨에 따라서 사람들은 일과 노동 외의 놀이와 여가, 이른바 레크리에이션에 대한 욕구가 더욱 확대된다. 하지만 이러한 욕구가 커지면 커질수록 올바른 놀이문화의 정착은 더욱 절실해진다.
그러면 과연 올바른 놀이 문화는 어떤 것이 되어야 할 것인가. 각종 소비와 오락, TV, 여행, 스포트, 연극이나 영화 관람 등 오늘날의 여가는 대부분 극도의 소비주의와 연결되어 상업주의적 색채를 띠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놀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여럿이 함께 하는 것처럼 보이는 놀이들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사실은 경쟁과 비교 속에서 혼자가 되는 것이며 대부분의 경우 함께 참여하는 놀이가 아니라 보고 즐기는 것일 뿐이다.
또 오늘날의 놀이들은 단순하고 이미 만들어져 제시된 것들 뿐이다. 따라서 새롭게 창조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다. 이는 바로 이른바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라고 불리우는 대중 문화의 생산품을 돈을 주고 사는 오늘날 놀이문화의 한 단면이다.
오늘날 우리들의 놀이가 지니고 있는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소비지향적이고 퇴폐향락적이라는 것이다. 그 가장 대표적인 것이 도박의 성향을 지닌 놀이들이다. 고스톱에서부터 시작해서 포카게임, 빠징코, 경마, 나아가 지나치게 만연돼 있는 복권들도 어쩌면 그런 성향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 전통 속에서 놀이는 무엇보다 공동체의 놀이였다. 개인과 개인이 단지 서로 각자 즐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함으로써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게 하는 놀이였다. 인터넷으로 하는 게임들 중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진행하는 게임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어쩌면 이러한 인간적인 커뮤니케이션과 참여에 대한 현대인들의 열망을 오히려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올바른 놀이문화가 지녀야 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창조의 힘이다. 놀이가 또 하나의 일이 되거나 노동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소비하고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를 위한 힘을 축적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일은 일로 끝나지 않고 놀이가 그저 놀이로 끝나지 않는 것, 그것이 올바른 놀이 문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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