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洞天茶廬’에서는 차분히 책을 읽거나 여행정보를 나누며 쉬어갈 수 있다. 강시인이 직접 달여 내놓는 죽엽차, 쑥차, 산야초 효소 등
마실거리들이 넉넉한 인심을 드러낸다.
눈매가 참 선하다고 느껴졌다.
작지 않은 키에 조금은 야윈듯한 체구. 입가에 엷은 미소를 머금고 이방인을 맞이하는 모습이 웬지 낯설지 않다.
수년전 아프리카를 가면서 23시간의 비행길에 지쳐 『「지구촌」이라고 하지만 아직도 아프리카는 너무 멀다』고 적은 적이 있다. 고산 윤선도로 인해 더욱 유명해진 보길도. 7시간을 달려 도착한 땅끝마을(土末)에서 다시 뱃길로 한시간. 좁은 땅덩어리지만 보길도 가는 길이 그리 녹녹치만은 않다.
윤선도의 보길도에서 이젠 「강제윤의 보길도」라 불릴만큼 유명세(?)를 타고 있는 강제윤(라파엘) 시인. 보길도에서 그는, 자신의 땀방울이 고스란히 담긴 「동천다려(洞天茶廬)」 한켠에서 그렇게 소담스럽게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전라남도 완도군 보길면 부황리 198-2. 세연정을 지척에 두고 흙과 돌과 나무가 어우러진 집 「동천다려」는 보길도를 찾는 이들이 차를 마시며 차분한 마음으로 책을 읽거나 여행에 대한 정보도 나누며 편히 쉬어갈 수 있는 곳이다.
「동천」이란 선계, 하늘로 통하는 문,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의미한다. 고산의 동천석실이나 하동군 화개골을 화개동천이라 하는 것도 다 같은 의미에서다. 「다려」는 차끓이는 오두막이란 뜻. 「동천다려」는 그래서 신선들의 찻집, 선계(仙界)에 있는 찻집이라고나 할까.
주인이 보길도에서 나오는 재료로 직접 달여 내놓는 죽엽차, 쑥차, 인동차와 산과 들의 산야초를 옹기 항아리에 2년 이상 발효시켜 만든 산야초 효소와 매실 효소 등 시원한 마실거리들은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넉넉한 인심.
사람들에게 그저 마음씨 좋은 민박집 아저씨 정도로 기억됐을 강씨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인터넷신문 「오 마이 뉴스」에 글을 연재하면서부터. 「 ~합니다」라는 산문체로 보길도 생활과 세상에 대한 생각들을 적은 그의 편지는 매우 정겨우면서도 진솔해 많은 네티즌들의 사랑을 받았다.
『동천다려 돌담아래/검은 염소는 풀을 뜯고/염소 옆에서/머리 검은 나도 풀을 뜯고 염소는 종일토록 풀을 뜯고/나도 저녁거리 풀을 뜯고/염소는 쇠비름 풀을 뜯고/나는 국 끓일 쑥을 뜯고/무쳐 먹을 다룽게를 뜯고 혹시 제 먹이 가로채갈까/염소는 나를 경계하고/내 먹이 염소가 뜯을까/나도 염소를 흘겨보고/햇빛 따뜻한 봄날/어린 염소도 풀을 뜯고』(「염소와 함께 풀을 뜯다」 중에서).
자연에, 이 세상 모든 생명있는 것들에 쉼없이 말을 건네는 자의 성찰이 담긴 그의 글들은 한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왜, 무엇을 위해서?』라는 보다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며, 정작 우리가 잃어버리고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준다.
그 글들이 묶여 지난해말 산문집 「보길도에서 온 편지」(이학사 펴냄)가 탄생했다. 지난 88년 「문학과 비평」을 통해 등단한 이후 89년 첫 시집을 낸 이래 그가 세상에 내미는 두 번째 작품이다.
강제윤씨에게 보길도는 고향이다. 초등학교 5학년때 보길도를 떠나 인천에 정착하면서 사회의 불평등과 부조리에 너무 일찍 눈떠버린 그의 삶은 이후 수많은 굴곡과 아픔과 외침으로 점철됐다. 고등학교 권고 자퇴, 출가와 환속, 철학과 입학, 3년 2개월간의 옥살이,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 등등.
그러나 지난 98년 3월, 20여년만에 다시 돌아온 고향에서 그는 고향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사람은 돌아오기 위해 고향을 떠난다고 하던가요. 하지만 나는 20년만에 돌아온 고향에서 고향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귀향이란 애초부터 실현불가능한 시도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고향이 결코 물리적인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고향이란 내가 태어나고 자란 시간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그러므로 고향은 결코 실재하는 곳이 아니며 귀향이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에 불과합니다』(「사람은 돌아오기 위해 고향을 떠납니다」중에서).
보길도에서 그의 꿈은 멀리있지 않다. 보길도의 자연들과 함께 하는 것. 말없는 바위와 돌들, 말없는 나무와 풀들, 별들을 보며 그 「말없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하며 가난하고 아름답게 살고 싶다.
『「더 적게 소유하고 더 많이 존재하라」는 말을 늘 가슴에 품고 삽니다.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는 것은 죄악일 수 있습니다』
「예수살이 공동체」의 박기호 신부님과 도법 스님을 가장 존경한다는 그의 꿈은 뭘까.
『세상의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사는 것이 꿈입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들, 식물들, 모든 사물이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으며 사는 용화세계, 그런 세상이 올 수 있을까요』
홈페이지 : www.pogildo.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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