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동부 지방의 작은 시골마을 떼제(Taize). 이곳에선 각기 다른 종교, 다른 나라 출신의 수사들이 교회의 일치와 인류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노력하는 국제 수도회 「떼제공동체」가 있다.
30여년 전부터 세계 각지에서 떼제를 향하는 이들, 특히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매주 300~6000명씩 이어지고 있다. 7월초 대구대교구 사목국 청소년담당 산하 W.Y.D(World Youth Day)모임 젊은이 30여명이 떼제 순례길에 올랐다. 떼제에서의 여정을 2회에 걸쳐 싣는다.)
거창한 기도방법을 알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어떤 종교를 가졌는지, 어느 나라 사람인지, 나이가 얼마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수천명의 사람들. 제각기 무릎을 꿇거나 혹은 신발을 벗고 편하게 앉아 있었다.
『기도는 불어로 할까? 아니면 영어로?』 수사들이 교회에 들어서고 공동기도가 시작됐을 때야 그 어떤 종류의 언어도 중요치 않음을 깨달았다. 귀에 익은 곡들도 꽤 있었다. 아니 반복되는 노래를 몇 번 들으니 쉽게 따라할 수 있었다.
단순한 오르간 반주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노래소리, 자연스레 어우러진 화음, 짧은 성서구절 그리고 침묵. 떼제에서 맞은 첫 아침의 여운은 그렇게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떼제를 찾은 이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기도가 아름답다"는 것이었다.
기도 안에서 하나됨
떼제에 도착한 시각은 자정이 지나서였다. 비행기를 타고 12여시간, 파리에서 또다시 6시간 정도를 달려 도착한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 지방의 작은 마을 떼제.
떼제의 독특한 레몬차 내음과 한국인 수사가 환영의 인사로 건넨 들꽃다발은 긴 여행의 피로와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긴장감을 씻어내기에 충분했다.
크고 작은 5개의 종소리로 시작한 아침. 종탑의 시선 끝에는 동방정교회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화해의 교회」가 단아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른 이들의 발걸음을 따라 노래책과 기도문을 모아들고 교회로 들어갔다. 교회에 들어선 순간 우선 그 규모에 놀랐다. 5000여명은 족히 앉을 것 같았다.
모든 눈길은 정면 제대로 모아졌다. 어두운듯 하면서도 따뜻한 조명, 흔들리는 촛불, 하늘 끝까지 마음을 이어주는 듯 늘어진 휘장, 십자가, 이콘, 감실…. 많은 것들이 있는 것 같았지만 마음을 흐트리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모든 것이 단순하고도 편안했다. 감실과 성수대가 여타 개신교회 신자들에게 주는 거부감도 거의 없는 것 같았다. 한번도 기도를 해보지 않은 비종교인들도 자연스레 기도의 마음을 열 수 있는 그런 분위기였다.
제대 모양은 특별한 의미를 드러내고자 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누구나 편안히 기도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고자 수사들이 이리저리 꾸며본 것이 지금의 형태가 됐다고.
30여년 전부터 세계 여러나라 사람들이 떼제를 찾기 시작했고, 다른 언어를 가진 이들이 함께 기도할 수 있도록 떼제의 수사들은 기도를 점차 단순화, 반복하게 됐다. 떼제의 노래로 드리는 기도는 이렇게 점차 모습을 갖춰왔다.
하루 세 번 드리는 공동기도의 정점은 침묵. 10분 정도 이어지는 이 침묵은 기쁘지 않기 때문에 행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하느님의 말씀을 더 잘 듣기 위한 방법의 하나였다. 금요일 저녁부터 떼제에서는 예수의 부활을 준비한다. 금요일 저녁기도 후에는 십자가 주위에서 하는 기도가 마련됐다. 한주의 절정인 토요일, 기도는 점점 깊어지고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더욱 깊이 묵상한다. 저녁기도 후 로제 수사와의 만남도 마련됐다. 매일 아침 7시40분, 주일 오전 10시에는 가톨릭미사가 봉헌됐다.
그 누구도 기도에 꼭 참여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도시간이면 온 마을의 움직임은 교회로 모이고 있었다.
떼제에서의 생활은 주일을 시작으로 보통 일주일 단위로 이어진다.
끊임없는 순례의 걸음
주일 아침이면 세계 각처에서 온 수많은 젊은이들이 떼제의 언덕을 오른다. 매주 작은 시골마을 떼제를 찾는 이들은 100여개국 3000~6000여명 정도.
떼제는 가톨릭, 개신교, 동방정교회 등 여러교회 출신 수사들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교회의 일치를 지향하며, '화해의 삶'을 구체적으로 살아간다. 이들이 공동생활을 하는 떼제마을은 연중 많은 이들이 찾지만 특히 7~8월, 떼제에서는 18~29세의 젊은이들이 다양한 그룹을 통한 체험을 가진다. 15~17세의 청소년, 30세 이상의 어른,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의 수도 꽤 많았다. 가톨릭, 성공회, 침례교, 칼뱅교, 감리교, 그리스정교…혹은 비종교인. 언어, 문화, 가치관 등의 모든 차이는 기도 안에서 일치를 이룬다.
희망의 충전소
기자의 관심은 무엇이 이토록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끄는 것인지에 온통 쏠렸다. 젊은이들과 함께 대화를 시작했다.
화해의 교회 옆에 서면 굽이굽이 이어지는 나지막한 푸른 언덕들이 펼쳐졌다. 창가마다 붉은 꽃화분이 놓인 붉은 벽돌집 사이를 걸으며, 기분좋은 향기로 환영하는 라벤더·로즈마리 꽃밭에서, 짙푸른 녹음의 자태를 한껏 드러낸 샘터에서. 떼제의 아름다운 자연은 수천명의 젊은이들이 자유롭게 움직일 만큼 충분히 넓었고, 조용했다.
떼제를 방문한 횟수가 너무 많아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하이디(Heidi·스웨덴·개신교·25)는 『지나친 개인주의에 회의가 들어 공동생활을 체험하고자 떼제에 왔다』고 했다. 그리고 이젠 남들과도 공동기도를 할 수 있게 됐다고.
고등학생인 베르와(Beroir·프랑스·17)는 "진로에 관한 고민을 친구들과 나누고자 떼제를 찾았는데 어렵게 공부하는 아프리카의 친구들과 나눠야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됐다"고 말했다.
안느(Anne·프랑스·가톨릭·23)는 친구의 세례성사를 돕기 위해 떼제를 방문하게 됐다. 본당에서 청소년들을 지도하고 있다는 그는 『가톨릭, 개신교회 신자들이 모두 한 목소리로 기도하는 모습에서 같은 하느님 안에서 일치됨을 느꼈다』고 한다.
휴학을 하고 떼제를 찾은 김성미(소화데레사·서울 명동본당·21)씨는 『용서하는 법을 알기 위해 왔다』고 했다.
감리교 신학생인 오종신(24)씨는 선교사가 되기 위해 마음을 준비하고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떼제를 찾았다.
남편이 성공회 신부인 김은희씨는 영국에서 유학 중에 휴식을 위해 성서 한권만 들고 떼제에 왔고, 강상헌(M.콜베·서울 갈현동본당)·연정은(아가다) 부부는 신혼여행지로 떼제를 방문했다.
피부색도, 나이도, 나라도, 삶의 처지도, 얻고자 하는 것도 달랐지만 그들은 모두 희망을 얻은 듯 했다. 성급하게 무언가 얻으려하지도 않았다. 많은 이들이 『새롭게 태어난 기분이다』『평화롭다』는 표현을 했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은 방향을 바꿔갔다. 자신을 만나면서, 이웃을 만나면서 하느님을 만나면서.
■ 떼제 공동체는
“진복팔단 정신아래 교회 일치·인류평화 위해 노력”
떼제공동체의 역사는 194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설자 로제 수사는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그리스도인들끼리 서로 갈라져 있으면서 어떻게 사랑의 하느님을 증거할 수 있겠는가?』를 고심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인류 안에서 평화와 화해, 신뢰를 전하는 삶을 위해 떼제에 자리잡았다. 44년 초교파적인 공동체를 시작했다. 49년엔 9명의 수사들로 정식 수도회가 발족됐다. 초기 이들은 유다인들과 독일군 포로들을 도우면서 종교와 민족 등을 초월한 「화해의 삶」을 구체적으로 실천했다.
현재 한국인 수사 3명을 비롯해 30여개국 출신 100여명의 수사들이 기쁨·단순·자비의 정신이라는 진복의 메시지를 나눈다. 이들은 나라와 언어, 종교가 다르지만 성서 말씀대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형제애를 나누는 「일치의 비유」의 삶을 엮어간다.
떼제 수사들은 각종 도자기, 인쇄업, 수공예 등 다양한 노동을 함께 한다. 그들은 『기도는 노동과 하나가 될 때 진실해진다』고 말한다. 일체의 기부금을 받지 않으며 심지어 가족들의 유산도 받지 않고 그들의 노동으로 얻어진 것으로 공동체를 꾸려간다.
수사들의 『인간이 결코 남의 고통과 시련에 무관심할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고통과 어려움이 있는 곳을 방문하고 함께 생활한다. 브라질, 방글라데시, 세네갈 등에 20여명의 수사들이 파견돼 있다.
우리나라에는 다섯명의 수사들이 생활하고 있는데 이들은 우리나라 분단아픔의 극복을 위해 기도하고, 장기수·사형수, 외국인 수감자들을 방문하고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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