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천국 입성을 위해 부지런히 공로를 쌓고 있던 1968년 봄 어느 날, 집에서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는데 홀연히 한 음성이 뇌리를 스쳤다. 놀랍게도 『너는 낫는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되씹은 나는 실소했다. 한 걸음 한 걸음 죽음의 문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내가 어떻게 나을 수 있단 말인가? 도무지 말 같지 않은 것이었다. 매일 밤낮으로 구약 시대의 욥처럼 혹독한 고통에 시달리는 나에게 완쾌된다는 가능성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나는 아예 헛생각으로 치부했다. 그런데 이상한 노릇이었다. 묵주기도를 바칠 때마다 똑같은 음성이 들려왔다. 이번에는 더욱 구체적인 내용이었다. 『너는 낫는다! 반드시 낫는다! 하느님은 잔인한 분이 아니시다. 사랑의 하느님께서는 30여년 간 고생한 너를 그냥 데려가지 않는다. 반드시 너를 낫게 해 주신다!』 마침내 나는 이 음성을 하느님의 응답이라고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이번에는 내가 물어야 할 차례였다. 『하느님!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해야 낫겠습니까?』 그러자 『너는 결혼해야만 낫는다』는 응답이 왔다. 참으로 기막힌 대답이었다. 결혼이 동네 아이 이름인가 말이다. 다리만 절어도 배우자 만나기가 어려운 터에, 나는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운 중환자가 아닌가, 언감생심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결혼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짓이었다. 그러나 나는 하느님 말씀을 이내 받아들였다. 제아무리 불가능한 일이라도 하느님께서는 가능케 하신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후 나는 주위에서부터 반려자를 찾기 시작했다. 금방 떠오르는 여인이 몇 있었다. 한 사람은 나를 레지오 협조단원으로 삼은 자매였다. 문학을 좋아하는 이 자매는 내가 레지오 행동단원이 된 후에도 계속 집에 찾아왔다. 나에 대한 호감이 있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고생이라는 걸 모르고 자랐을 이 청순하고 예쁜 자매는 결혼 상대자로 너무 과분하다고 여겼다. 나 자신의 처지를 생각할 때 원만한 부부가 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른 한 자매는 매우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같은 교리교사였다. 나는 이 자매에게 현재 투병중임을 밝히고 결혼하고 싶다고 고백했다. 자매는 흔쾌히 승낙했다. 우리는 자주 만났고, 서로 상대방의 집에도 들렀다. 나의 부모님은 사근사근하고 아들의 처지를 이해하는 그녀를 아주 좋아했다. 그런데 자매의 집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의 어머니가 한사코 반대했다. 그도 그럴만했다. 이 어머니는 나하고 같은 쁘레시디움 단원이었으므로 나의 고단한 투병생활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급기야 우리는 교제한지 1년 수개월만에 하느님 앞에서 혼인성사를 받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헤어졌다. 나는 이 때 그녀가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 후 나에게 헌신하겠다는 자매가 다시 나타났다. 결혼에 실패한 이 자매는 나를 간병하는 데 아주 열성적이었다. 이에 하느님의 뜻을 채우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의 집에서 여인의 여러 허물을 들어 완강히 반대했다. 중환자인 나로선 이 반대를 물리칠 방책이 없었다. 나는 인생의 반려자로 여겼던 여인들을 단념해야 하는 슬픔을 신앙의 힘으로 이겨내면서 하느님의 응답이 현실로 이루어질 날을 고대했다. 이상하게도 하느님께서 맺어 주시는 반려자가 어느 하늘엔가 반드시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러나 이 무렵 죽음이 지척에서 손짓했다. 치료라고 해봐야 내가 매일 환부 소독을 하는 게 고작이니 병세가 갈수록 나빠지는 것은 불을 보듯 빤한 일이었다. 그 까닭에 당시 내가 살아있음은 결코 나의 힘이 아니었다. 참으로 하루하루 처절하게 투병하면서도 기도와 성사 생활은 물론이요, 나에게 주어진 레지오 활동을 계속하고, 게다가 하느님께서 맺어 주실 반려자를 기다렸다는 게 의학적인 상식이나 이성적인 판단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이런 나를 지켜보던 「흑조 시인회」 동인들이 지금까지 써놓은 시들을 모아 시집으로 내 보라고 권했다. 그들은 나에게서 죽음의 그림자를 발견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 가여운 사람이 죽기 전에 시집이라도 갖기를 바랐던 것이다. 나는 곧바로 시들을 정리하여 1969년 12월 「금단의 늪」이라는 제목의 처녀 시집을 발간했다. 비록 풍성하거나 화사한 시집은 아니었지만, 여기에는 미당 서정주 선생님이 주신 추천사가 불우한 시인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리고 원로 시인 신석정, 박희진 선생님의 격려 서한과 김남조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시집이 나를 크게 감격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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