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의 기막히고 잔인한 여성 억압의 상황을 살펴보면서 동시에 여성억압의 고통이 제시하고 있는 창조적 해방의 의미를 찾고자한다.
암논의 상사병
사건은 다말에게 향한 암논의 상사병에서 시작된다. 암논은 다말을 사랑하였으나 그녀가 처녀라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당시 관습에 따르면 처녀는 특별히 보호되어 오빠라고 할지라도 자유롭게 만남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남매라도 결혼을 할 수 있었다(13절). 암논이 애만 태우다가 병이 난 것은 욕망 때문이었다(11절 14~15절). 이것은 「ehab」라는 단어에서 나타난다. 「ehab」는 결혼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여성을 성적매력의 대상으로 사랑하거나, 또는 단순한 성행위를 말할 때 사용된다(창세 24, 67).
암논은 자신의 욕정을 숨긴 채 다윗의 권력을 이용하여 다말을 유인하여 강간한다. 압살롬의 누이로 칭해지던 다말이 암논의 누이동생으로(5절) 강조되면서 무책임한 다윗의 말 한마디가 암논의 음욕을 은폐시키고, 다말의 운명을 결정하게 된다.
지혜로운 다말
이에 다말은 『이러지 마십시오. 나를 욕보이지 마십시오. 이스라엘에서는 이런 법이 없습니다(12절)』. 다말이 암논을 이성적으로 단호히 거절하나 힘이 센 암논은 다말의 의사를 무시하고 그녀를 욕보이고 만다. 성서에서 「욕보이다」라는 「anah」가 억압이나 착취에 의해 인간이 파멸되고 굴종될 때(출애1, 11 신명 26, 6)사용된다.
이러한 강간의 폭력성과 억압성은 암논이 자기의 욕심을 다 채운 후, 다말에게 취한 태도에서 나타난다. 『어서 나가』, 『이것을(zoth, this)쫓아 내고 문을 걸어라』(ha ishsha, this woman)이라는 용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지시대명사인 zoth(this)를 사용함으로써 다말이 당한 비인격인 상태를 강조한다. 나의 누이라고 간드러지게 유혹하던 암논은 이제 다말을 가치없는 하나의 물건이요, 내버려야 할 쓰레기로 취급한다. 다말을 강간하고 추방한 암논의 행위는 인간의 기본권마저도 박탈한 행위이다.
다말은 암논에게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함으로써 그의 불의를 가차없이 지적한다. 뿐만 아니라 힘을 통한 강제의 능욕보다는 부모가 맺어주는 합법적 결혼이 이스라엘의 길이라고 그 대안까지 제시한다. 다말은 강간을 당한 후에도 이스라엘의 법도에 어긋나지 않게 사후 수습을 하라고 말한다. 그녀의 현명함은 그 사회에서 잘 순응된 모습이다.
한 여성의 삶 파멸
암논에게 쫓겨난 다말은 머리에 재를 들쓰고 걸치고 있던 장옷을 찢으며,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목놓아 울면서 돌아갔다. 머리에 들쓴 재는 애곡(욥2, 8), 회개(욥42, 6)의 표시이며, 「옷을 찢다」는 동방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슬픔을 나타내는 행동으로 왕권에 의해 처녀성이 찢겨졌다는 상징이다. 고통과 비탄에 젖은 다말에게 있어서, 자신의 보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울부짖음이었다.
다윗은 성폭행 당한 딸을 위해 아무런 정의의 일도 행하지 않는다. 다말은 이제 인습에도, 제도에도 보호받지 못하고 압살롬의 집에서 남편이 죽은 과부처럼 쓸쓸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다말의 이야기는 권력을 배경으로 한 남성들에 의해 자행된 인권유린의 현장이었으며 왕권의 남용과 오용이 한 여성의 삶을 파멸시켰다.
성서는 인간이 하느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음을 선포하고 인간의 몸은 하느님의 성전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성폭력은 하느님에 대한 도전이며 존엄한 인권에 대한 침해이다.
교회는 종말론적 미래상에 여자, 남자 , 주인, 종 모두가 동등한 하느님 계약의 동반자로 등장한다는 예언자적인 시각을 가지고 성서해석과 신학적 재구성 등의 작업을 통해 가부장제와의 유착을 단절해 내는 내적 갱신이 필요함을 시사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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