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와 성형수술을 둘러싸고 벌어진 이번 사건은 이씨와 성형외과 의사의 갈등, 나아가 미용성형산업과 다이어트 비디오산업의 패권다툼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위에서는 전하고 있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 사건을 『외모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광적인 집착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해프닝』이라고 규정짓는다.
『이씨는 끊임없이 예뻐져야 한다고 강요하면서도 예뻐지기 위해 자연스럽지 않은 수단을 동원하는 것은 평가절하 하는 이중적인 가치관이 팽배한 외모중심사회의 피해자』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 사건에 여성의 몸을 길들이고 통제하는 가부장제 구조와 여성의 몸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자본의 구조가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여성의 몸에 심각하게 가해지는 편견과 억압으로 평범한 외모와 정상체중의 여성들이 몸을 「개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게 되는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여성의 몸은 여성의 것이, 내 몸은 내 것이 아닐 지도 모른다.
대규모 미용성형시장
수년 전부터 젊은 여성들의 성형수술은 붐을 이루고 있으며 중년, 10대 그리고 남성들에 이르기까지 미용성형의 대상이 확대되고 있다. 국세청 과세 자료에 따르면 미용성형 시장은 연간 5000억원 규모. 무면허 시술 등 음성적인 부분까지 합치면 연간 3조원이 넘을 것이라는 추산이 나온다.
성형수술 열풍 속에서 미용성형의 영역 또한 머리에서 발끝까지 신체 전체로 확대됐다. 이마를 넓히고 주름을 펴고 눈썹에 뼈를 심고 광대뼈나 턱뼈를 깎고 주걱턱을 다듬고 입술과 가슴을 부풀리고 종아리 근육을 잘라내고 지방을 제거하는 등 그 종류가 150여 가지에 이른다.
젊은 여성들이 「성형적금」「성형계」에 들어 수술비를 마련하고 10대 자녀를 둔 부모는 외모가 인생의 성공과 행복을 좌우한다며 졸업에 맞춰 성형수술을 「선물」한다.
이들 대부분이 미모가 곧 그 사람의 경쟁력이고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한 수단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대 후반의 한 여성은 『아름다운 외모로 보다 나은 이성을 만날 수 있고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기회 또한 많아지는 것이 사실인데 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며 『우리 사회에서 예쁜 얼굴과 날씬한 몸매는 곧 한 개인의 부의 척도가 돼버렸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 주간지가 인터넷을 통해 네티즌 33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번이라도 성형수술을 받아보고 싶은 적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있다」고 답한 사람은 208명(63.0%)이고 「없다」고 답한 사람은 113명(34.2%)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성형수술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가급적 안하는게 좋다」고 답한 사람이 150명(45.5%)인 반면 「하는게 좋다」(28명, 8.5%) 「할수도 있고 안할수도 있다」(147명, 44.5%)고 답해 부정적인 인식이 절반을 넘지 않았다. 「신체발부수지부모」란 한자성어는 고루한 옛말에 불과한 시대가 된 것이다.
성형을 부끄러워하며 남에게 숨기는 것도 옛날 얘기로 헤어스타일을 바꾸듯 기분전환용으로 가볍게 생각하는 위험한 풍조에서부터 끊임없이 얼굴을 뜯어고치려고 하는 정신질환자에 이르기까지 성형수술과 관련한 각종 병리학적인 증세까지 발생하고 있는 형편이다.
육체중심 문화로 전환
현대사회의 화두 중 하나는 「몸」으로 얼마 전부터 몸에 관한 이야기가 문화전면에 부상하고 있는 추세다. 근대사회까지 노동력을 제공하는 생산수단으로만 여겨지던 몸은 이제 인간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인지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회학자들이 현대사회를 정신 우위의 문화에서 육체 중심의 문화로 전환되는 과정이라고 밝히고 있듯 지금까지 육체보다 정신에 기대어 자신의 삶을 영위해온 인간은 신, 종교, 형이상학, 공동체에 대한 관념을 잃은 채 이제 육체를 중요한 매개체로 존재감을 인식하게 됐다.
따라서 육체를 꾸미고 가꾸는 일에 대해 비난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더군다나 아름다운 몸이 일정 정도 인간 주체의 실현을 보장해주는 구체적인 수단으로 자리잡은 마당에 이를 수긍해야 할 필요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몸은 욕망의 원천인 동시에 욕망의 대상이므로 남들보다 수려한 외모를 갖고 싶은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아름다워지려는 욕구의 추구가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로 결정되는 시스템에 따라 극단적으로 나아간다는데 있다. 요즘의 「성형열풍」은 아름다워지고 싶은 순수한 욕망의 발현으로 보기엔 심각하다는 지적들이다. 이 때 인간의 몸은 주체가 아닌 객체로 전락하고 몸은 정신을 벗어나 헤맨다.
임인숙 고려대 한국사회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최근 '한국미용성형산업의 팽창 전략과 함의'란 논문을 통해 성형수술을 조장하는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자료와 신랄한 비판을 가해 사회에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는 약 20년 사이에 전체 전문의 수의 증가율은 7.3배인데 비해 성형외과 전문의는 무려 38.5배나 증가한 사실을 두고 이러한 증가가 과연 수요에 대한 반영인가 하고 묻는다. 그보다 의사들이 의욕적으로 수요를 창출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노골적인 성형수술 광고와 광고나 다름없는 기사의 폭발적인 증가가 그 증거이며 성형수술 상품권을 경품으로 내세우는 기업의 상혼도 이를 부채질한다. 일례로 일부 성형외과에서는 경품과 무료상담으로 손님을 끌고 사무장 등 영업사원까지 동원하다 적발된 사례도 있다.
임씨는 『성형수술이 외모 콤플렉스 없애고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효과도 있다는 광고가 설득력을 얻고 있지만 바로 그러한 성형수술 광고 자체가 외모 콤플렉스를 조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간과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여성의 본능이라면 성형수술 광고들은 왜 그렇게 극성을 부리는가』하고 의문을 던지며 『실제로 여성들의 꾸밈은, 여성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강박증의 표현이며 여성의 아름다움을 기대하는 사회에 대한 의무수행』이라고 주장한다.
몸매와 외모 중시의 사회는 곧 윤리의 혼란을 부르고 사회적 건강의 붕괴로 이어진다. 화장, 패션, 다이어트, 성형수술로 최대한 외모를 개선해 사회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다는 그릇된 흐름이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한 내가 내 몸의 진정한 주인이 되기는 쉽지 않다.
「원하는 몸」을 가지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 덜 먹고, 많이 운동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가꾸도록 채찍질하는 이들은 그것이 육체를 소중히 관리하려는 주체적인 행동인지 뚱뚱한 몸, 평범한 외모로는 살아남을 수 없고 신분상승을 도모하기 힘들다는 위기의식에 따른 부침인지를 잠시 멈춰서 생각해보아야 할 때다.
▲ 모방송국에서 조사한 부위별로 닮고 싶은 연예인들. 왼쪽부터 김현주(입), 심은하(눈), 전도연(이마), 채림(코), 김희선(얼굴형).
■ 교회의 가르침-영혼과 육신 조화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이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성령이 계시는 성전이라는 것을 모르십니까?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Ⅰ고린토 6, 19)
그리스도교의 육체에 대한 이해와 관련해 교회는 영혼에 비해 육체를 천시한다고 잘못 이해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육체 자체를 비하한 것이 아니라 육체의 욕망으로 불러일으킬 수 있는 죄를 경계하고자 함이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인 「사목헌장」을 살펴보면 교회는 신이 내린 육체를 좋은 것으로 여기고 있으며 육체와 영혼의 조화로운 관계를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목헌장 14항은 『육체와 영혼으로 단일체를 이루고 있는 인간은 그 육체적 성격으로도 이미 물질세계의 요소들을 한 몸에 집약하고 있다』고 말한 뒤 『따라서 인간은 그 육체적 생명을 천시해서는 안될 뿐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께 창조된 육체가 마지막날에 부활할 것이므로 좋고 영예로운 것으로 알아야 하겠다』고 밝힌다.
또 『그러나 죄로 상처받은 인간은 육체의 반항을 체험하게 되므로 인간의 존엄성은 육체로도 하느님을 찬미하고 육체가 마음의 악한 경향을 따르는 일이 없도록 요구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질그릇 같은 우리 속에 보화를 담아주셨다』(Ⅱ고린토 4, 7). 육신에 집착하고 집착이 우리를 파괴할 때 우리는 질그릇과 같이 보잘 것 없는 존재이다.
질그릇과 보화의 조화로운 관계, 육체와 정신의 올바른 상호성을 찾는 일이 현대사회에서 갈수록 어려워지는 만큼 신앙인들의 끊임없는 자기반성이 요구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