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을 걸었다. 골배마실에서 미리내 성지로 배티성지로 또다시 솔뫼로 이름없이 스러져간 순교자들의 신심을 되짚으며 해미성지로. 갈매못을 지나 전라도로 들어서 나바위 성지로. 여산 숲정이서 천호성지, 전동성당, 숲정이, 치명자산을 지나 한티성지로 넘어왔다. 무릎으로 기어 십자가의 길을 따라 신나무골 성지로. 마원성지를 지나 연풍성지에서 배론성지로 걸었다.
타는 듯 내리쬐는 한여름의 뙤약볕과 사정없이 쏟아붓는 장마비에도 쉼 없이 발걸음은 이어졌다. 한걸음 한걸음마다 회개와 보속의 기도를 실었다.
『먼저 나 자신이 회개함으로써 성화될 수 있고, 교회의 성화, 세상의 성화를 기도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전교 수녀회(관구장=서계숙 스텔라 수녀) 수녀 10명은 종신서원을 앞두고 으례하던 현장 체험 대신 7월 2일부터 26일까지 약 한달의 일정으로 도보성지순례에 도전했다. 단지 하느님을 사랑한 마음 하나로 목숨까지 내어놓은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따라 그들의 신심을 다시 한번 가슴 깊이 담았다.
이번 순례에서는 특별히 내년으로 다가온 수녀회 설립 300주년을 준비하며 교회의 성화라는 큰 지향 아래 수도자, 성직자, 평신도의 성화를 위해, 수도회 총회 준비를 위해 기도했다.
프란치스코 수녀회 수녀들은 작은 것, 매일의 평범한 일에서 희생하고, 기쁘게 몫을 다하며 회개와 성화의 길을 따르도록 노력한다. 도보성지순례길에 나선 수녀들도 자신의 한계를 이겨내고 회개의 중요한 방법의 한가지로 순례를 택한 것. 그들은 자기자신을 돌아보고, 현대를 살아가며 순교자들의 신앙을 어떻게 세상에 드러낼까 고민했다.
걷는 시간 대부분은 기도로 이어졌다. 분심을 떨쳐버리기 위해 발걸음을 뗄 때마다 예수님을 불렀다는 한 수녀는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 기도임을 새삼 느꼈다고 했다.
순례길은 예상대로 쉽지만은 않았다. 매일 새벽 4시30분이면 도시락을 싸들고 새로운 걸음을 시작했다. 발에 물집이 생긴 것은 말할 것도 없었고, 열기로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길과 산길을 오르노라면 숨쉬기조차 힘겨웠다.
배티성지를 올라갈 때는 너무 힘들어 주저앉은 수녀도 있었다. 수녀들은 "순교선열들의 순교지 및 유적지를 순례함은 마땅히 해야할 일이며 우리의 신앙생활과 수도생활에 크나큰 보탬이 되는 일이라…회개의 여정을 통해 하느님께로 나아감에 그 목적이…"라는 성지순례의 취지를 서로 읽어주며 격려했다.
하지만 순례의 끝머리에서 만난 수녀들의 얼굴은 근 한달을 걸어온 이들 같지 않게 밝았다. 그들은 모두 "기도 덕분에 순례의 걸음을 계속 이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서로를 배려하고 격려하는 동기자매들이 있었기에 매일매일 다시 걸을 수 있었다고. 순례 도중 만난 이웃들은 먹거리며 잠자리를 아낌없이 내주며 하느님의 사랑을 그득그득 쌓아줬다.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430여㎞의 여정을 무사히 마친 이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았다.
"진정 회개하며 모은 것을 내어놓고 하느님께 맡길 때 은총으로 가득 채워질 수 있다"고.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전교 수녀회는 내년이면 설립 300돌을 맞는다. 수녀회에서는 작년 9월부터 올 9월까지를 회개의 해로 정하고 특별히 기도하고 있다.
또한 누구든 수도자들과 함께 자유롭고 편하게 기도하고 쉴 수 있는 '피정의 집' 마련을 위해 매실차와 인진쑥, 스파게티 소스 등을 손수 만들어 판매하는 등 한마음을 모으고 있다. ※ 도움 주실 분= (031)246-0241 수녀회 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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