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가 쓴 기행은 읽는 재미가 특별하다. 작가 특유의 문체와 필력으로 써 내려간 여행지의 묘사와 느낌은 소설보다 더 생동감 있는 「사실」로 독자에게 전해지기 때문.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등어」등 유수의 베스트셀러를 펴낸 소설가 공지영(마리아)씨가 창작 생활 13년만에 처음으로 기행 에세이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을 내놓았다. 특히 이 책은 순례와 함께 작가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왕복하면서 반추한 참회록인 만큼 특별한 여운을 남기는 책이다.
한 달간 유럽을 여행하면서 아르정탱, 그레고리안 성가의 본산인 베네딕도 남자 봉쇄 수도원 솔렘, 리옹의 가르멜 수도원, 떼제 공동체, 몽포뢰 도미니꼬 수도원 등 각국의 수도원을 여행하며 느낀 감상을 책으로 엮은 수도원 기행은 내밀한 자기고백과 함께 작가가 직접 촬영한 「그림엽서 같은」 유럽 수도원의 풍경, 그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그러나 정치적 관념적 소재에 집착했던 이제까지의 작품과 다르고, 여느 기행문과 다른 것은 18년간 교회와 신앙을 떠났던 작가가 수도원 순례를 통해 자신의 내면 세계에 눈과 귀를 기울이는 과정이 병행되고, 앙금처럼 남아있던 하느님과 자신에 대한 불신이 감사와 순종으로 승화된다는 점.
또한 사춘기 시절 시인을 꿈꾸던 문학소녀가 「하얀 미사포 쓰고 파이프오르간이 은은히 울리는 아무도 없는 성당에서 기도를 올리면 더할 나위없이 구색이 맞을 것 같아서」 세례를 받았던 고백부터 신학생을 짝사랑하며 매주 면회를 갔던 주일학교 교사시절, 젊음의 열정과 순수가 받아들일 수 없었던 부조리한 현실로 인해 신앙을 멀리하게 된 사연들이 유럽의 수도원 기행 중간중간에 오버랩된다.
공지영씨는 책 말미에 『이번 여행을 통해 다채로운 화엄 세계의 한 모퉁이를 엿보았고 그리하여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한 뼘이나 자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며 『삶의 의미를 찾다가 실의에 빠진 사람들, 따뜻함과 위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한때 삶을 미워했던 이들에게 위안이 되길 바란다』고 적고 있다.
<김영사/256쪽/전면 컬러/9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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