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모든 면에서 나태해지기 쉬운 계절 다시 한번 우리 생활을 뒤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특별히 휴가기간 가족들과 함께 하면서 가정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가정의 행복을 위해 우리가 해야할 준비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조선 성종 때의 문신 허종에 관한 이런 일화가 전해진다. 성종이 왕비 윤씨의 성품이 그르다하여 폐비시키고 나서 사약을 내려 죽이려 할 때의 일이다. 이 명령을 내리기 위해 성종은 군신회의를 소집했다. 허종은 이때 우찬성이었으므로 그 회의에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침에 입궐하는 길에 그는 누이의 집에 들렀는데 누이는 그를 보고 이런 말을 한다.
『큰일이로세. 폐비에게 사약을 내리는 회의에 어찌 참석한단 말인가. 여염집에서 그 집 여주인을 죽이는 일에 종들이 참여했다가 훗날 그 여주인의 아들이 집안을 잇게 되면 종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후환이 없을 수 있겠는가?』
누이의 말에 허종은 깨달는 바가 있었다. 그는 말을 타고 입궐하다가 다리 위를 지나게 되자 그만 다리 아래로 떨어져버렸다. 이렇게 해서 다리를 다쳤다는 핑계를 대고는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
드디어 누이의 예상대로 성종이 죽고 나서 즉위한 연산군은 어머니의 억울한 죽음을 알고는 피비린내 나는 복수극을 벌였으니 그것이 바로 갑자사화였던 것이다. 바로 허종은 앞일을 내다본 지혜로운 행동이 있었기 때문에 그 화를 면할 수 있었다.
모름지기 사람은 누구나 멀리 내다보고 일을 계획하고 진행해야 한다. 지금 준비하지 않고 미래를 염려하지 못한다면 가까운 미래에 모든 것을 후회하고 근심거리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것을 잘 알면서도 게으름과 무관심 때문에 이를 지나치게 되고, 또 어떤 경우는 순간적인 눈앞의 이익에 눈이 가려져 먼 곳을 내다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낭패를 보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옛 어른들은 『사람이 먼 생각이 없으면 반드시 가까이 근심이 있다』라는 뜻으로 인무원려 필유근우(人無鴛侶 必有近優)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하느님 나라를 고대하고 영원한 삶을 지향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절실히 요구되는 자세일 것이다.
오늘 복음은 주인을 기다리는 종들의 비유를 통해 하느님 나라를 기다리고 있는 신자들이 어떠해야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 자세는 바로 주인을 기다리는 종들의 자세여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루가는 이를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 놓고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루가가 말하는 허리에 띠를 띠는 자세는 소아시아의 옷을 만드는 법과 입는 법에서 온 것이다. 그들은 옷이 길었기 때문에 여행할 때나 활동할 때에는 옷자락을 들어 허리에 띠를 매는 습관이 있었다. 그리고 이 자세는 출애급 사건과도 관계가 있는 자세로 과월절 음식을 먹을 때 허리에 띠를 띠고 먹어야 된다는 것으로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준비된 자세를 상징한다. 때문에 이 자세는 어떤 것이든 할 수 있는 준비, 즉 일할 준비가 되어 있는 태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면 될 것이다.
그리고 등불을 켜 놓고 준비하고 있는 것,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밝히기는 힘들다. 그러나 옛날 교회 관습에 본당에 주교가 오면 환영의 표시로 등불을 켜 놓고 맞이하던 풍습이 있었고, 우리네 풍습도 집안의 어른이 돌아오지 않으면 불을 켜 놓고 기다리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등불을 켜 놓고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주인에 대한 환영과 존경 그리고 예의의 태도로 보면 무난할 것이다.
돌아오는 주인을 위해 종들이 이러한 자세를 가질 때 주인은 그를 식탁에 앉히고 시중든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실은 주인과 종의 관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행동으로 하느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가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는 말씀일 것이다.
그러나 어떻든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종들이 가지는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 놓고 준비하고 있는 태도는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종들의 기본적인 임무라는 것이다.
바로 이 사실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준비'라고 하면 무엇인가 특별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하느님 나라 혹은 종말을 준비하라"라고 하면 무슨 특별한 일들, 지금까지 내가 하지 않은 무슨 일들을 하는 것이 올바른 준비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 복음은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우리가 가져야 될 마음의 준비와 영혼의 깨어 있음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장차 다가올 미래의 일을 염려하면서 현재의 자신의 일에 충실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느님 나라를 기다리는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라는 것이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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