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동기중 사제된 사람 3명
대구 성 유스티노 소신학교 입학동기는 17명이었으나 이중 사제가 된 사람은 나와 전북 나바위 출신인 강윤식(베네딕도) 신부, 또 일본에서 사제가 된 조순업(가밀로) 신부 뿐이다. 대구가톨릭대 초대총장 전석재 몬시뇰은 바로 윗 반이었고 가톨릭시보 사장을 역임한 신상조 신부와 대구결핵요양원장이던 김동한 신부는 바로 아랫반이었다.
당시 소신학교 입학생의 나이는 어렸다. 10대 초반의 나이가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부모곁을 떠나 생활한다는 것은 그렇게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잠자리에 들면 여기저기서 홀짝홀짝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로 말은 안하지만 사제가 되겠다는 큰 꿈을 안고 막상 집을 떠나왔지만 조그마한 어려움에도 아파하는 나이어린 성소 지망자의 고통을 누가 알아주겠는가?사실 서울에서 공부할 때보다 대구 소신학교 시절이 훨씬 기억에 많이 남아 있다. 그땐 참 무서움이 많았던 것 같다.
대구에서 공부할 때 이 무서움으로 생긴 여러가지 이야기중 하나를 소개한다. 우리 소신학생들이 묵고 있던 기숙사 문을 나서면 바로 건너편에 성직자 묘지가 빤히 내려다 보였다.
낮에는 별 다른 생각없이 출입을 했으나 밤만되면 묘지의 토끼 풀이 바람에 부닥치며 서로 비벼대는 소리가 음산하기까지 해 두려움이 한층 더 했고, 기숙사 문만 나서면 누군가가 쳐다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뒷골이 쭈뼛쭈뼛 했다. 그래서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물을 먹고 싶어도 참을 수 밖에 없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으면 여러 사람을 모아 한꺼번에 나가서 볼 일을 보곤 했다. 한 손에 묵주들고 한쪽 겨드랑이엔 성서를 끼고 하느님만 생각하면 인간적인 욕망이나 두려움이 싹 사라질 것 같았는데…. 참 어리석게도 묘지가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자상했던 엄택기 신부
그때는 추위도 무척 탔다. 신학교 마당에 샘이 있었는데, 이 샘에서 물을 길어 세수하고 목욕도 했다. 그러나 겨울만 되면 샘이 얼어붙어 얼음을 깨 세수를 해야만 했다. 물로 세수를 했다기 보다 얼음으로 얼굴을 씻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얼음이 얼굴에 닿을 때마다 느끼는 차가움이 아직도 생생하다. 추위때문인지 폐병에 걸린 사람들도 꽤 많았고 병이 심해져 급기야 싸늘한 시신으로 변해 신학교를 나가는 사람들도 많이 생겼다. 당시 성 유스티노 신학교 교장인 프랑스인 엄택기(嚴宅基, Taguet) 신부는 「무골호인」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너그럽고 자상하신 분이셨다. 엄신부는 나이어린 소신학생들이 이렇게 고통을 겪자 걱정도 많이 했다. 소신학생들이 아버지처럼 따르고 믿고 의지하며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항상 의논할 수 있는 유일한 어른이었다.
하느님 섭리에 감사
대구 성 유스티노 소신학교에 비해 서울 동성상업학교는 모든 면에서 생활하기가 참 편안했다는 생각이 든다. 1937년 동성상업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성유스티노 신학교 철학과에 입학하기위해 대구로 내려온 나는 덜컥 맹장염에 걸렸다. 지금은 그리 중한 병이 아니지만 그 당시에는 심각한 병이었다. 애써 공부해 이제 대신학교 과정만 이수하면 꿈에도 그리던 사제가 될 수 있는데 여기서 끝장이 나고 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자 이런 시련을 준 하느님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나를 담금질하기 위한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 섭리의 한 부분이라고 마음을 다지며 기꺼이 시련을 맞이하자 오히려 고통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무사히 수술을 받고 건강을 회복해 대신학교에 입학하게 된 것은 오로지 하느님의 은총이었으리라.
지금은 없어졌지만 철학과 2년 과정 이수후 펼쳐지는 '삭발례'가 인상적이었다. 신학교 마당에서 펼쳐지는 이 행사는 장엄했으며 철학과를 마친 신학생들에게는 다시한번 사제성소에 대한 의지를 다지는 기회가 됐다. 잘려져 가는 머리카락을 보며 눈물을 훔치는 신학생들, 성직에 대한 갈등과 희망이 교차하며 '이젠 정말 나에게는 하느님 밖에 없다'는 결심이 묻어나오는 시간이었다. 삭발례 후 중백의(中白衣)가 지급됐다.
조부의 소망에 보답
1940년 철학과를 마치고 신학과로 진학한 나는 1943년 9월 8일 부제품을 받고 다음해인 44년 6월 3일에 대구대교구 계산주교좌성당에서 당시 대구교구장인 하야사카 이레네오 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았다. 나는 조부께서 그토록 원하시던 사제가 된 것이다. 사제서품식에서 제의를 입을 때 내 머리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부모님을 비롯해 할아버지, 고모, 김영제 신부님, 입학 동기들…. "아! 하느님께서 내가 사제가 되는 것을 드디어 허락하셨다"나는 수품 후 이틀만인 6월 5일 첫 소임지인 거제 명진본당(현 마산교구 거제본당)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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