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나라 이야기, 장밋빛 꿈이라고만 여겨지던 주5일 근무제가 눈앞에 다가왔다.
삶의 질 향상을 목적으로 현행 노동관계법상 주 44시간인 법정근로시간을 40시간으로 단축하는 주5일 근무제는 3년 전 노사정위원회 설립 이후부터 실시유무를 논의해온 사항으로 현재 노동자, 사용자, 정부 모두가 원칙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상태다. 지난해 노사정위가 이에 대해 합의했으나 흐지부지 될 뻔했던 것을 노동계가 5월 총파업을 강행한 이후 대통령이 긍정검토를 지시했고 최근 다시 청와대에서 시행을 앞당기겠다는 의지를 밝혀 도입이 확실시되고 있다. 준비기간 등을 감안할 때 2003년에야 공무원과 공기업 등 공공부문부터 시작해 이후 정착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나 실시유무 논란에서 나아가 이제 시행시기와 시행방안만을 남겨두고 있는 것이다.
주5일 근무제를 원칙적으로는 찬성하면서도 노사는 현재 구체적인 시행시기나 시행안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먼저 노동계 입장에서는 우리나라가 대표적인 장시간 노동 국가이며 노동자의 삶의 질이 저하되어 있다는 것을 이유로 이를 즉각 시행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재계 등 사용자측은 근로시간 단축이 비용부담을 가중해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을 우려하며 '시기상조론'을 놓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휴일수 증가로 인한 휴일의 재조정 문제가 논의되면서 월차와 생리휴가 폐지 여부, 초과근무 수당 지급, 연차 유급휴가 상한제 등 세부 사항에 대한 합의가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성공적 정착위해 정부지원 필수
주5일 근무제를 둘러싼 수많은 논란 중 가장 핵심적인 사안은 주5일 근무로 인한 노동시간 단축이 과연 생산성의 증가를 가져올 것이냐 하는 문제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일반적으로 근로시간이 줄어들면 노동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져 작업능률이 향상되고 경영시스템과 생산방식이 효율적으로 변화해 생산성이 도리어 향상된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근로시간 단축을 진행한 89년 이후 4년간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12.6%로 나타났다.
이같은 증가율은 근로시간 단축 이전 4년과 이후 4년의 노동생산성 증가율인 9.0%와 10.7%보다 훨씬 높은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이 생산성 증대로 이어졌다는 증거다. 일본노동연구기구가 펴낸 '노동시간 백서' 또한 1970~1987년 사이 일본 노동자들의 평균 근로시간이 1% 줄어들 때 노동생산성은 3.7%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경쟁력의 원천으로 삼아왔던 것에서 벗어나 정보화 시대에 걸맞는 경쟁력을 갖추도록 기업의 시스템을 개선하는 일이 우선적으로 요구된다. 기술혁신과 조직개편으로 가급적 적은 노동시간으로 더 좋고 많은 결과물을 창출하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일과 아울러 일하는 시간이 아니라 성과를 관리할 수 있는 과학적인 시스템의 확보가 필요한 시대로 접어드는 것이다.
주5일 근무제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가 일정한 부담을 질 수밖에 없다고 관계자들은 주장한다. "근로시간 단축이 근로자들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한 것이라면 정부 지원은 당연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프랑스 정부가 노동시간을 주 35시간으로 단축한 기업의 근로자에 대해 1인당 사회보장비를 지원해 주는 등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대체재원을 정부 보조금으로 충당한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강력한 시행의지를 뒷받침할 만한 정부의 재정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제도 시행을 마냥 서두를 것이 아니라 철저한 준비를 거쳐야할 것이라는 목소리또한 높다. 경제, 사회적 효과를 면밀히 검토해 제도 시행 준비를 완벽히 해야만 경제,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하고 노동자와 사용자 양측이 모두 이득을 볼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5일 근무제는 단순히 노동조건의 변화만이 아닌 국민 생활 패턴이 달라지는 문제이며 학교의 주5일 수업 등 교육, 의료, 교통 등 제반 여건 또한 변화해야 한다. 일본은 업종, 기업 규모를 고려해 11년간 단계적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했으며 미국과 프랑스도 노동시간 단축 방침을 정한 뒤 2년간 유예기간을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5일 근무제 도입이 가져올 파급효과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결과는 아직 없지만 전문가들은 사회 전반에 걸쳐 가히 '혁명적인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의 경제사회적 효과 분석'을 연구중인 한국노동연구원의 김승택 연구원은 "무엇보다 관광, 레저, 유통, 문화산업 등 내수산업 진작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하며 "전모를 예측하기란 불가능하지만 일과 직장 중심의 생활문화에서 가족중심의 문화로 바뀌고 한정된 소득 중 여가활동과 자기계발에 지출하는 비용이 증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 대부분 외국계 기업이나 내외국 합작기업이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고 삼성, LG, SK 등 대기업 또한 격주 토요휴무제를 시행한 상황에서 이들의 사례를 통해 단편적으로 변화를 내다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한 외국계 합작회사의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오혜원(35) 과장은 6개월 전 토요휴무제가 실시되면서부터 긴장과 스트레스가 완화되고 생활에 활력이 생긴 것을 체감한다. "어쩔 수 없이 일과 직장 중심이었던 생활에서 점차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질 수 밖에요. 다른 직장 동료 역시 공부나 취미, 여가생활 등 자기발전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이 늘었다고 말합니다. 물론 주어진 업무를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주중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 마련이지만 주말 계획을 생각하면 절로 힘이 나는 걸요"주일학교 주중에 실시 검토
이러한 변화와 아울러 교회 내에 불어닥칠 변화와 이에 대한 사목적인 대응 또한 조심스럽게 논의되고 있다. 한 일선 사목자는 "토, 일요일 이틀간 여행, 레저, 취미활동 등을 본격적으로 즐길 수 있게 되면서 아무래도 주일 미사 참례자 수가 감소할 것이 아니냐"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해 실제로 한 교구에서는 주5일 수업제가 실시될 것을 대비해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운영되고 있는 초중고등부 주일학교를 주중에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하며 시범본당 선정 등을 고려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주일학교 주중에 실시 검토
이러한 우려 반면에 1박2일 이상의 집중적인 신자재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신자들의 참여도가 높아지고 이와 함께 보다 다양하고 심도 있는 재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 또한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삶의 여유와 가치관 변화로 각종 봉사활동, 지역활동 등이 활발해져 소공동체 활성화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 또한 가질 수 있다.
교황의 사회교리 회칙들은 노동과 휴식,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해 어떠한 시각을 제공하고 있을까? 사회교리 문헌들은 창세기에서 볼 수 있듯 "하느님 자신이 당신의 창조활동을 '노동과 휴식'이라는 형태로 표현하시길 원하셨으므로 인간은 노동과 휴식을 하면서 하느님을 닮아가야 한다"고 밝힌다(노동하는 인간 25항). 가정, 문화, 사회, 종교생활을 영위하기에 충분한 휴식과 여가는 모든 노동자에게 제공되어야 하며(사목헌장 67항) 인간은 인간 본연의 존재가 되어 주님이 당신의 종과 친구들을 위해 마련한 '휴식'을 누릴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어야 한다(노동하는 인간 25항).
사목헌장 61항에서는 또 "노동시간의 점차적인 단축은 많은 사람들에게 날로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하며 여가는 마음의 휴식과 심신의 건강을 위해 선용되어야 하겠다"고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한편 서울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용동진 신부는 "주5일 근무제는 노동계의 사안만이 아닌 전반적인 사회구조상에 걸친 문제"라고 전제한 뒤 "노동시간 단축이 노동자들이 쉴 수 있는 시간을 많이 누릴 수 있다는 차원에서 나아가 일자리 나눔과 장기실업극복의 해결책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우리나라 사람들 얼마나 일하나?
‘실제 노동 주당 50시간’ ILO조사 75개국 중 7번째
한국은 OECD국가중 유일한 주6일 근무제
우리나라 국민들이 너무 많이 일하고 쉬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로 통계치를 통해 이를 확연히 살펴볼 수 있다.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연간 근로시간은 선진국은 물론 대만 싱가포르 등 경제발전 단계상 우리와 비슷한 수준에 있는 나라에 비해서도 높다. 99년 기준으로 연간 근로시간은 미국 1957시간, 영국 1737시간, 일본 1842시간, 대만 2285시간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무려 2497시간에 달한다. 실제 노동시간 또한 주당 50시간으로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조사한 75개국 중 7번째로 길어 국제사회의 의아한 눈길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연간 휴일, 휴가 일수를 비교해 보아도 역시 다른 국가에 비해 너무 짧고 그나마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휴일, 휴가일수는 주휴일 52일, 공휴일 17일, 월차휴가 12일, 연차휴가 10~20일 등으로 모두 합치면 91~101일 수준. 그러나 실제 근로자들이 사용하는 휴일, 휴가일수를 보면 78.8일로 그쳐 법정휴가 일수와 실제 사용일수 모두 미국 142일(126일) 일본 129~139일(132일) 영국 132~137일(136일) 독일 140일(144일)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드러난다. (괄호안은 실제 휴가 사용일수).
유럽 대부분 국가들은 이미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독일의 실제 노동시간은 주37시간, 프랑스는 35시간으로 금요일 점심부터 주말이 시작된다. 일본은 97년부터 주40시간 근무제를 도입해 99년 이를 완전히 정착했으며 중국 역시 97년부터 전면적으로 시행에 나섰다. 태국 역시 지난해 이를 실시해 아시아 나라에서 주6일 근무를 하는 나라는 싱가포르와 우리나라 정도이며 OECD 국가 중 유일한 주6일 근무제 국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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