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가장 두려운 것이 아무런 꿈도 희망도 목적도 없이 살아가는 것』이라는 휠체어 장애인 박대운(29·아우구스티노·서울 홍제동본당)씨는 일찌감치 이런 두려움들을 뒷전에 감춰 둔지 오래.
그는 두 다리 없이 휠체어를 타고 있다는 것 이외에 또래 청년들과 다를 것이 없다. 수영을 즐기고, 볼링도 치고, 운전을 하고, 술을 마시고, 무엇보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 두 다리가 없다는 것도 가끔 잊고 신발이나 양말을 사주려는 예쁜 여자친구도 있다.
다를 게 있다면 자랑할 게 많다는 점이랄까. 95년 지리산 노고단 휠체어 자력 등정, 98년 유럽 5개국 2002km 휠체어 횡단, 방콕 아시안 게임 성화 봉송, KBS 주관 「21세기 도전 청년 10인」과 조선일보 「올해의 인물 13위」에 선정, 99년 한일 국토 종단 4000km 휠체어 대장정, 한국대학신문 「영향력 있는 대학생 3위」선정 등 보통 사람은 할 수 없는 일들을 해냈다.
그는 『하느님은 내게서 두 다리를 가져가셨지만 그보다 더 값진 보상을 해주신 것 같다』며 『사람들은 장애를 입었다고 말했을지 모르지만 장애를 입은 것이 아니라 복을 받는 열쇠를 얻었다고 말하고 싶다』고 밝힌다.
그러나 그가 「스스로 장애에 갇히지 않기 위해」 살아온 삶의 이면에는 보통 사람이 해내기 힘든 눈물겨운 노력들이 있었다. 대구에서 태어난 그는 여섯 살 때 교통사고로 졸지에 두 다리를 잃었다.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반 학교에 입학, 비장애인들과 함께 학교를 다녔다. 장애인이라고 주눅들어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꺼리는 것은 스스로를 낮추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남의 시선을 피하기보다는 사람들의 시선을 즐겼다. 일부러 남의 눈에 띄는 행동을 골라서 했고 『불량 장애인』『홍길동 같은 놈』『절대 도와주고 싶지 않은 놈』『당당하다 못해 뻔뻔스러운 놈』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당당하게 살아왔다.
그런 그에게도 몇 번의 좌절이 있었다. 한의대 입학의 꿈이 장애를 이유로 좌절됐던 것.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재수시절 만나 처음 사랑을 느꼈던 여자 친구의 아버지가 독서실까지 찾아와 반대했을 때에는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었다. 『수면제가 목에 걸려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며 웃는 그는 『어릴 때부터 나는 특별한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해왔어요. 죽음까지 갔었는데 살게 하신 것은 하느님께서 중요한 곳에 쓰시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하느님께서 나를 아끼시기 때문에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것이라 생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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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도 내가 사랑해야 할 내 모습이죠. 나도 사랑하지 않는 내 모습을 다른 누가 사랑할 수 있겠냐』고 반문하는 그는 『장애가 다소 불편하지만 인생을 살면서 크게 차지하는 부분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앞으로도 사람들 안에서 적극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박대운씨는 같은 장애를 지닌 또래 청년과 청소년들에게 『자기 자신에 대해 확신을 갖는 게 중요하다』면서 『생각이 바뀌면 신체 장애는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박씨는 최근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다룬 에세이 「내게 없는 것이 길이 된다」(북하우스)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