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1943년 창립된 서울성가소비녀회는 작은 여종 「소비녀(小婢女)」들이 가난한 인간을 위해 사셨던 예수님처럼 가장 낮은 자들을 위해 자신을 봉헌하고 이웃을 섬기며 살아가는 수도공동체다.
성가소비녀회가 설립될 당시 한국사회는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전사자, 부상자, 고아와 무의탁 노인이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이들을 돌볼 수 있는 활동수도회는 거의 없었고 외국으로부터 파견받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 때 선교사제로 한국에 파견돼 서울 혜화동본당에서 사목하고 있던 파리외방전교회 성재덕(1920∼1992) 신부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일할 성교회의 일꾼이 필요하다고 결심했다. 성신부는 그와 뜻을 같이한 두명의 지원자를 모아 성가소비녀회를 창립하고, 당시 사목하고 있던 서울 혜화동본당에서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도록 했다. 언제나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주었던 성신부는 논산본당에서 14년간 사목하면서 노인들을 위한 양로원을 세웠고 나환자들의 정착을 돕기 위해 성광원을 설립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투신했던 성신부의 의지는 오늘날까지 소비녀들에게 이어져 실현되고 있다.
성신부가 말한 「종의 영성」이자 성가소비녀회의 영성은 예수그리스도의 강생에서 비롯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스스로 낮추어 이 세상에 내려와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며 참다운 섬김의 모범을 보여왔던 것처럼, 그를 따르는 제자들도 가난하고 불우한 사람에게로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수도회가 12월 25일 성탄절에 시작된 데에는 가난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가난한 사람을 위해 사셨던 예수님을 본받아 소비녀들도 이웃을 섬겨야 한다는 창설자의 정신이 담겨있다.
두명의 지원자로 시작된 성가소비녀회는 지극히 가난한 처지였지만 인류구원에 협력한 예수님, 성모마리아, 요셉의 삶을 본받아 나자렛 성가정처럼 화복하고 행복한 공동체생활을 일궈나갔다. 45년 서울대교구의 승인을 받은 성가소비녀회는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소속 수녀들을 초빙해 정식 수도생활 양성에 들어가 47년 첫 서원자를 배출했다. 『소비녀들은 저희들이 벌어서 불쌍한 사람을 먹이고 생활하라』는 성신부의 가르침에 따라 수녀들이 직접 삯바느질이나 궂은 일을 해 생활비를 벌었다. 노동과 본당일, 가난한 사람을 돌보는 일을 함께 병행해온 성가소비녀회는 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대구, 부산, 제주도 등지에서 고아를 돌보고 부상병을 치료하면서 고유 카리스마를 실천해나갔다. 49년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수도회 규칙서를 정식 인가받은 수도회는 성신부가 논산본당으로 부임하고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수녀들이 떠나자 52년 자립기를 맞이했다. 자립기 동안 수녀회는 신설본당으로 수녀를 파견하고 성가양로원과 성가보육원을 운영, 성가의료원을 설립하면서 수도회의 정체성을 보다 명확하게 실현해나갈 수 있었다. 이후 본당과 병원 등 분원을 신설하면서 수녀회는 고유 사도직활동을 넓혀나갔고 한국교회 안에서 일익을 담당했다.
1969년 창립 25주년을 맞이한 수도회는 창립자인 성신부를 지도신부로 맞이하면서 보다 깊은 영성생활을 할 수 있었고, 창설자의 정신에 따라 공동체를 이끌어갔다. 수도회 창설 40주년이 되던 83년에는 성신부의 「내림의 정신」을 시대의 징표에 맞게 새로운 사명으로 적응하기 위해 내적쇄신의 시간을 가졌다. 그 결과 86년 수도회 명칭을 「성가수녀원」에서 「서울성가소비녀회」로 바꿨고 새 교회법에 재조명해 회칙을 개정했다. 교회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쇄신하고 사도직식별을 해온 성가소비녀회는 해외, 북한선교 또한 수도회의 고유한 사회복지 사도직 실천으로 이어갔다. 가난한 이들을 찾아 하느님의 눈과 마음으로 바라보며 식별하고 실천할 수 있는 공동영성을 키워나가기 위해 전 회원이 강의와 피정, 연수, 고리기도 등을 지속으로 펼쳐나가고 있는 수도회는 소외된 지역의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주님의 안배를 믿고 작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 되어 보시오』라고 말한 창설자 신부의 뜻을 회원들 삶 안에서 실천해나가고 있다.
창립 후 58년이 지난 오늘, 500여명의 회원과 천 여명이 넘는 여러 신비체 가족들과 한가족을 이루며 살아온 성가소비녀회는 작은 겨자씨 한알이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생명을 품어주는 큰 나무로 성장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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