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당신은 어떤 보물을 가지고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우선 결혼할 때 주고받은 번쩍번쩍 다이아몬드 반지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거액을 주고 구입한 그림이나 조각을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보물은 알고 보면 더 가까운 곳에 있다. 침대를 생각해 보라. 길거리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 노숙자들을 생각하면 침대야말로 보물이 아닐 수 없다. 식사를 할 때 숟가락이 없다고 상상해 보라. 생명을 연장시키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보물 중의 보물이다. 우리는 이렇게 일상 속에서 주어진 보물을 보물로 생각하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침대가 없어져야지만 침대를 보물로 생각한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보물로 여기지 않던 사람도 막상 숟가락과 젓가락이 없어지면 그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많은 은사를 주셨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그 은사를 보물로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히 나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은사 중 단 한 가지만 없어도 우리는 당장 상상할 수 없는 큰 불편을 겪게 된다. 알게 모르게 우리가 살아갈 길을 안배하시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은사를 은사로 생각하기 위해선, 늘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그동안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상상할 수도 없었던 것들을 이제는 발견해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깊이 들어가야 한다. 스스로의 내면을 파고들어야 한다. 물론 깊이를 추구하는 것은 아프고, 귀찮고,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루하루 먹고 살아가기 바쁜데, 인간 내면 깊숙이 들어간다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 갈등과 내면의 허무한 느낌, 고통, 혼란스러움은 깊이 있는 것을 깊이 있게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생겨난다. 고통과 허무함, 혼란스러움은 넓고, 크고, 화려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만 추구하기 때문에 생긴다. 그래서 가치관과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우왕좌왕 한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지만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공에 붕 뜨게 된다. 이 같은 현상은 특히 많은 젊은이들의 모습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앞에서 공부한 것을 다시 기억해 보자.
마음의 성향에는 4가지 요소가 있다고 했다. ‘합치’(congeniality) ‘융화’(compatibility) ‘연민’(compassion)‘역량’(competence)이 바로 그것이다. 합치란 하느님 안에 있는 원천, 기원(genesis)에 대해서 신실하게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내 안에 있는 하느님 존재를 찾아서 그 안에서 머무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또 의문이 생긴다. 하느님 안에서 머문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쉽게 말하면 합치란 ‘계속해서 찾는 것’을 의미한다. 그 분의 뜻이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추구하는 것이다. 하느님과의 합치를 위해선 먼저 ‘Who am I’(나는 누구인가)를 물어야 한다. 내가 누구인지, 또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융화(compatibility)가 일어난다. 융화란 쉽게 말하면 지금 여기서 다른 사람과 함께 편안하게 있는 것을 말한다.
또한 우리는 ‘연민’(compassion)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상처가 많다. 따라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깨어진 항아리의 상처는 보듬어져야 한다. 우리는 이해하고 용서해야 한다. 우리는 이해받고 용서받아야 한다. 용서를 청하고 용서를 받고, 용서를 받고 용서해야 한다. 이 합치, 융화, 연민은 이제 역량에 가 닿는다. 마음으로부터 합치, 융화, 연민이 있어야 세상을 향한 참된 인간 역량을 발휘하게 된다. 이 네 가지는 우리의 전 존재가 통합을 지향하도록 이끌어 간다. 공명(조화로움·Consonance)을 향해 움직여 나가게 한다.
합치, 융화, 연민, 역량은 주어진 선물이다. 은사다. 이 선물은 세속의 108번뇌를 녹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108번뇌 안에서도 108가지 이상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하는 영적 은총이다. 우리는 이렇게 우리 매일의 일상생활 한가운데서 하느님의 놀라운 은총을 필요로 하는 창조물들이다.
우리는 하느님이 내안에 처음부터 심어주신 합치, 융화, 연민, 역량의 능력을 계속 성장시켜야 한다. 하느님은 이런 바탕 속에서 우리를 계속적인 성장(지속적 형성·on-going formation)에로 초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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