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면 영광, 쉬면 행복’. 전재희(마리아·60)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은 자신의 일과를 이 한마디로 압축했다.
그의 하루 일과는 눈이 돌아가리만치 바쁘다. 대개 오전 7시를 전후해 장관실에 들어서면 오후 8시까지 업무가 이어지기 일쑤다. 매일같이 시간을 분, 초 단위로 쪼개 쓰는 바쁜 일상에 힘이 빠질 만도 하지만, 그에게서는 한 치의 게으름도 찾아보기 어렵다. 업무에 대한 집중력은 그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때문에 그의 손에는 늘 필기구가 쥐어져 있다.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잉크로 옷을 더럽히는 경우도 종종 일어날 정도라고. 지울 수 있는 연필과 요점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돕는 형광펜은 그의 애장 필기구다.
직원들 사이에서도 ‘인기 장관’으로 통한다. 대충 임기만 채우려는 안이하고 권위적인 모습의 장관이 아니라, 행정계와 정치계를 두루 섭렵한 역량을 한껏 발휘하는 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각종 업무를 꼼꼼히 챙기고, 늦은 시간에도 결재를 받아 주는 덕분에 일을 미루지 않고 빨리 처리할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
“제가 일하는 만큼 국민들이 행복해진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 하느님이 주신 복 중 최고의 복인걸요. 일하도록 허락해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매일을 살아갑니다.”
활화산 같은 열정으로 뛰고 있는 전재희 장관을 ‘가톨릭 인터뷰’에서 만나봤다. 어떠한 질문에도 막힘없이, 또한 차분하면서도 자신감 있게 답변하는 면모는 세간의 평가와 다르지 않았다. 소탈하면서도 호방한 웃음에서도 그의 ‘깊은 내공’이 묻어났다.
인터뷰 서두에서부터 국내 자살 문제가 언급됐다. 지난 주 발표된 한국 여성의 자살률이 1위라는 OECD 조사 보고서 내용이 환기됐기 때문이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받아들인다면 결코 자살은 하지 않을 텐데…. 하지만 제가 이렇게 말하면 삶이 얼마나 고달프고 힘든지 모르는 장관이라며 섭섭해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하지만 전 장관은 어린 시절부터 가난을 뼛속 깊이 체득하며 더욱 강인해진 인물이다.
그는 “생명은 축복인데, 우리가 축복의 시간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누리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삶 안에서 하느님 뜻을 거스르는 것이 아닙니까?”라며 반문한다. 특히 전 장관은 “우리 사회에서는 행복의 척도를 경쟁에서 이기는 것, 물질적인 것을 얻는 것에 너무 큰 비중을 두고 있다”며 “짧은 기간 동안 압축?고속 성장을 해오면서 어느 새 우리의 문화와 정신적 가치가 변해버렸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정신문화 리모델링에 나서야 할 때가 됐다.
전 장관은 리모델링의 선구자가 되길 흔쾌히 받아들였고, 그 첨병으로서 복지부 장관직을 맡았다.
“할 일은 태산처럼 많고, 그것을 다 이루기엔 힘이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 꾀부리지 않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특히 전 장관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으로 ‘나누고 사는 것’을 제안한다.
“지난 사순절 기간 동안 십자가의 길을 봉헌하면서, 인간에게 고통이 주어질 때, 어떻게 그것을 기뻐하고 기도할 수 있겠는가 또 다시 고민했지요. 그리고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나누는 것’이라는 결론을 다시 한 번 인식했지요.”
지난 4월 초에 입법예고된 모자보건법 개정안과 관련해서도 각계의 따가운 지적에 수긍했다. 복지부는 이번 개정안에서 낙태 허용주기를 현행 28주에서 24주로 변경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4주 정도의 단축은 낙태 금지와 관련해서는 큰 의미가 없다며 실망스런 목소리를 전했다.
전 장관은 무엇보다 생명수호를 위해서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는데 동감했다. 이어 “예를 들어 팔을 다쳐 깁스를 했다면 그것을 풀고도 재활 치료 기간이 필요한 것처럼 사회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있어서는 인내심과 많은 논의와, 합의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며 “우선은 복지부가 나아가는 방향성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사실 전 장관은 정책과 관련한 업무 외에도 평소 생명수호 문제에 큰 관심을 보여 왔다. 2002년부터는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생명운동본부(전 생명31운동본부) 홍보대사로 활동해왔으며, 최근에는 범국민적인 장기기증캠페인에 열성이다. 지난 3월에는 자신은 물론 복지부와 산하 직원 1,795명의 동참도 이끌어내 장기기증 서약서를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 전달한 바 있다.
특히 전 장관은 인간 생명 뿐 아니라 모든 창조물을 보전하는데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길 바란다고 밝혔다. 국가적으로는 저출산 문제 해결과 위기가정 구하기, ‘중산층 키우기 휴먼뉴딜 정책’ 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전했다. 그 모든 일은 ‘국민들 입장’에서 선택하고 수행한다. 국민들을 위한 정책이 만들어지고 또 원활히 운영되도록 사회 각계에서도 합의와 논의를 보태주길 바란다고.
“모든 사람의 외모나 성격이 똑같지는 않습니다. 모든 이들의 견해가 같을 수는 없습니다. 민주주의의 요체는 나와 다른 의견을 곱새겨 듣는다는 것입니다. 나의 의견만이 전적으로 옳다는 것에 머물러 있지 않고, 상대방의 의견도 충분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대화해 나가면 정의와 선의의 목소리가 모아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전 장관은 ‘최초’란 수식어를 연이어 달고 다닌 공직자이자 정치인이었다. 여성 최초 행정고시 합격에 이어 노동부 직업훈련국장을 지낸 후 관선 경기 광명시장에, 곧바로 여성 최초 민선 시장에 선출됐다. 제16대 국회 비례대표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해 3선 의원으로 활동했다. 16대 임기 중에는 의원직을 사퇴, 보궐선거를 통해 정계에 복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수더분해 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단호하고 결단력 있는 행보와 대안없는 질의와 비판에는 결코 나서지 않는 모습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장관직을 수행하면서 ‘행정의 달인’으로서 면모가 더욱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는 평가다. 그렇게 복지부 장관직을 수행한 지 8개월째를 맞고 있다.
“가끔 무엇 때문에 하느님이 죄도 많고 부족한 저를 쓰실까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합니다. 그럴 때면 ‘주님께서는 높으셔도 비천한 이를 굽어보시고…저를 구하십니다’라는 시편이 떠오릅니다. 못나고 부족한 이들일수록 다른 이들을 위한 희망의 상징으로 쓰시고 계신다고 믿어요.”
그는 직업공무원으로 활동하다 광명시장 출마 권유를 받았을 때는 3개월 이상을 고사하며 도망 다녔다. 죽어도 마이크를 들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큰소리칠 수 없다는 생각부터 자신이 시장이 될 수 없는 이유를 줄줄이 나열하고 다녔다. 공천 부탁이 아니라, 공천을 받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을 한 ‘이상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데 절두산성지에서 기도를 하다가 뜻을 바꾸게 됐다고.
“한참 기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헷갈리는 겁니다. 나만 편하려고 십자가를 외면하는 모습이 아닌가 하고요. 광명시장 임명 이후 지금까지 제가 계획한 삶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획으로 이뤄진 삶이라는 것을 절감합니다.”
이후 국회의원직에 이어 장관직까지 맡게 됐다. 그는 자신의 행보에 대해 ‘순명’이라고 표현한다면 호사스러운 것이라고 거절한다. 깊이 성찰해보면 감사의 눈물밖에 남는 게 없다고 말한다. 단지 성찰할 시간조차 없이 바쁘다는 말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그의 마음이다. 신앙은 그에게 있어 시작이자 마지막 버팀목이지만, 광명시장 임명 이후 더욱 하느님께 의지하게 됐다. 자신에겐 너무 벅찬 일을 맡았기 때문이다. 하느님 때문에 이 길에 들어서게 됐다는 생각에 종종 ‘하느님, 제가 얼마나 힘든지 아세요?’라는 원망 섞인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하지만 하느님은 인간의 생각으로 한계 지을 수 없는 분이잖습니까. 엄마가 아기를 키우면 똥 싸는 아기도, 코 흘리는 아기도, 밥그릇 깨는 아기도 예쁘게 보지요.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은 사랑 그 자체이시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시는 것이 아닌가 절감합니다. 그런 조건 없이 사랑해주시는 하느님이 좋아서 닮으려고 애쓰지요.”
복지문제를 책임지는 장관으로서 바람은 한결 같다. ‘자유, 정의, 평화, 번영, 통일을 이루는 국가’와 ‘그 누구도 기죽지 않고 희망을 지닌 국민’의 모습이다. 장관직을 수락하기 전 이 단어들을 앞에 두고 하느님께 기도를 올렸었다. 일에서는 ‘신속, 정확, 정직, 투명, 신중’을 기준으로 삼고 달려왔다. 자신을 위해서는 ‘잠을 조금 더 잘 수 있었으면 한다’는 소박한 바람뿐이다.
“분명한 것은 매화의 향기가 진하려면 겨울이 추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각종 사회문제와 시련은 더 큰 발전으로 나아가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작은 촉매제로서 더욱 노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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