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세와 결별하고 수도자의 길을 선택한 프란치스코는 1208년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성당에서 미사를 보던 중 영혼을 사로잡는 성경의 한 구절을 듣게 된다.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도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마태오 10, 9-10)
그때부터 프란치스코는 신발과 옷, 지팡이를 모두 버리고, 양치는 목동들이 입던 허리를 노끈으로 질끈 묶는 모자 달린 옷으로 바꿔 입었다. 이 목동의 옷은 카푸친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복장이 되었는데, 카푸친이란 외투에 달린 모자를 가리킨다.
이때부터 프란치스코의 청빈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는 움막에서 기거했으며, 일체의 재산을 소유하지 않았고, 육체노동과 동냥으로 살면서 사람들에게 영혼의 구원을 설교했다. 그의 설교는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동시대인들을 감동시켰다고 한다. 말이 힘을 얻는 것은 말하는 자의 말과 행동이 일치할 때인데, 프란치스코야말로 그 본보기였다.
프란치스코는 이탈리아 전역은 물론 유럽과 이슬람 국가까지 건너가 설교했다고 한다. 그의 설교는 당시 신자들의 답답한 가슴을 뻥 뚫어주는 그 무엇이 있었던 것 같다. 성인 주변에는 그와 뜻을 함께 하려는 동료와 제자들이 생겨났고, 이들은 움막에서 함께 기거했는데, 미천한 삶을 산다는 의미에서 작은 형제회(Fratres Minores)라 불렸다. 이들은 간단하지만 규칙도 만들었으며, 1210년에는 교황 인노첸시오 3세로부터 수도회의 규칙을 승인받았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우리에게 남긴 선물 중에 성탄구유가 있다. 그는 베들레헴의 가난한 아기 예수를 기억하며 성탄 장면을 재현하였다고 하는데 그것이 크리스마스 전통이 된 것이다. 성인은 선종 2년 전인 1224년 오상(五傷)을 받았고, 그 출혈로 인하여 엄청난 신체적 고통이 있었으나 오상은 평생을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삶을 살다 간 성인이의 상징이 되었다. 1226년 9월 선종하였으며, 그로부터 2년 뒤 교황 그레고리오 9세에 의해 시성되었고, 유해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에 모셔졌다.
성 프란치스코는 예술의 나라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이며 그래서인지 특별히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았다. 선종 직후부터 프란치스코 성인의 모습을 담은 그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중의 으뜸이 1295년부터 1300년 사이에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에 그려진 조토의 벽화로서 성인의 일화를 마치 기록 영화를 보듯이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다.
그 중에 ‘새에게 설교하는 성 프란치스코’가 있다. 성인의 설교가 얼마나 좋았으면 새들까지도 성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모여들었을까? 조토는 바로 이 순간을 보여주고 있는데 성인은 모자 달린 수도복을 입고 있으며 맨발로 그려졌다. 성인 옆에 있는 여인은 아시시 출신의 클라라로서 프란치스코 성인의 임종 때까지 곁을 지키며 그 뜻을 따른 성녀다. 새들이 부리를 종긋 세우고 성인의 말씀을 듣고 있는 풍경이 사랑스럽고 평화로워 보인다.
조토는 여기서 중세 천년 동안 이어져온 관념적 회화에서 탈피하여 대상을 눈에 보이는 대로 재현하는 사실주의를 시작했는데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그의 그림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개혁적인 설교에 비유되기도 한다. 두 사람 모두 당대 폭발적인 영향을 미쳤고 그 영향이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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