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청춘을 맞이한 나이답게 더 힘차게 신앙을 전하고 사랑을 살아가도록 해야겠습니다.”(군종교구 2009년 부활메시지 중)
선교의 황금어장 군종교구가 20돌을 맞았다. 교구의 역사를 돌아보고 의미를 되짚어보자.
한국 교회의 군종활동은 한국전쟁 중에 시작됐다. 1951년 육군본부 인사국에 군승과를 설치한 육군은 각 종단에 군종 후보생 모집을 통보했다. 이에 가톨릭에서는 11명의 신부들을 파견, 육군군종으로 입대해 본격적인 군사목을 시작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군사목이 퇴색하는 듯했지만 군종신부단 제2대 총재인 노기남 주교가 1958년 박희봉 신부를 필두로 군종신부단을 창단시켰다. 이후 1961년 주교회의로부터 정식인준을 받은 군종신부단은 전후방 각 부대에 배치 받아 사목활동을 펼쳤다. 베트남전쟁 당시에는 1965년부터 1973년까지 총 33명의 군종신부를 파견해 군종활동 및 대민지원활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1970년대는 가톨릭군종사에 있어서 새로운 시대가 열린 시기였다. 오랜 군사목 경력을 바탕으로 교회와 군에서 인정받고 확대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발판에는 군종후원회와 가톨릭 장교회의 물적?양적 지원이 있었다. 두 단체의 도움 덕분에 전방 사단지역에 군종신부 배치를 완료했으며 성당과 사제관을 지속적으로 건립해 나갔다. 또한 1977년에는 처음으로 국제군인순례대회에 참가했다.
1989년 ‘한국 군종교구 설립에 대한 교황 칙서’가 발표되면서 군종신부단은 정식으로 교구로 설정돼 초대교구장으로 정명조 주교가 임명됐다. 이는 군사목을 시작한지 39년, 군종신부단이 창설된 지 29년 만의 일이었다.
교구는 이후 1992년 새 교구청사를 건립하면서 제1차 사목세미나 개최를 비롯, 사목위원회를 발족하는 등 다양한 사목활동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또한 동티모르와 이라크 자이툰부대에 군종신부를 파견해 군인들의 신앙생활을 위해 노력해 오고 있다. 그 결과 교구는 연간 약 3만 명의 세례자를 낳으며 청년사목의 황금어장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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