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제가 죽은 줄 알고 도망갔어요. 깨어나 보니 네 살 난 아들이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어요.”
크리스티나씨는 남편의 폭력이 극에 달했던 악몽 같았던 그날을 떠올리며 치를 떨었다. 한국인 남편은 크리스티나씨와 함께 산 7년 동안 줄곧 외도와 폭력을 일삼았다. 시댁식구들은 크리스티나씨 앞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한국말로 대화하며 소외감을 안겨줬다.
“다 참을 수 있었어요. 아이를 위해서요. 그렇지만 그 순간, 이혼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롭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크리스티나씨는 그 길로 집을 나왔다. 아들 둘(4세·2세)을 데리고 나왔지만, 당장 갈 곳이 없었다. 필리핀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부모님을 볼 면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지방 소도시에 월세방을 얻었지만, 일하는 동안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결국 두 아들과 함께 필리핀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아이들을 남겨둔 채 홀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저는 한국에서 원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요. 발레리나, 피아니스트, CEO….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저는 저를 끔찍이 사랑해주는 그 남자를 위해 돌아왔어요.”
그녀가 말하는 ‘그 남자’는 실재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는 발레를 배운 적도, 피아노를 배운 적도 없다. 다만 현실과 상상을 분간하지 못하는 망상 장애를 앓고 있을 뿐이다. 영어회화 강사로 일하기도 했으나, 정신적 장애 문제로 인해 일자리를 잃었다.
크리스티나씨의 상담을 맡고 있는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최정진 간사는 “치료하기 위해서는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하는데, 의료보험이 없는 크리스티나의 경우 적어도 월 300만원의 비용이 든다”면서 “한국 국적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의료적 지원을 받을 길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행복을 찾아 한국에 온 크리스티나씨, 그는 일그러진 꿈을 다시 곧게 펴 일어날 수 있을까.
이혼 후 어려움 겪는 결혼이민여성 크리스티나씨
어려운 생계에 질병까지 ‘막막’
발행일2009-04-19 [제2644호, 20면]
▲ 남편의 폭력으로 이혼했지만 생활고와 정신적 장애로 여전히 고통을 겪고 있는 결혼이민여성 크리스티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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