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로 알려진 알빈 신부(1904~1978)가 한국교회에서 다시 조명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알빈 신부 선종 20주년을 맞아 단국대 건축학과 김정신(스테파노) 교수와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이 함께 세미나와 전시를 마련해 알빈 신부의 행적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1978년 선종할 때까지 성당과 공소를 포함해 총 185개의 교회건축물을 설계한 바 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는 현대적인 교회건물을 한국교회에 전파한 장본인으로서도 그의 작품들은 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를 건축가로만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성당은 물론 그 안에 필요한 성물도 직접 제작할 정도로 실력있는 미술가였다. 대표적으로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성당의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열두 사도의 성만찬’을 들 수 있다.
제단 후면 벽 전체에 그려진 벽화는 전례공간과 조화를 이루면서 수도회를 찾아오는 신자들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는 공간 활용과 조화를 중시하던 알빈 신부의 의도가 그대로 담겨져 있는 것이라 하겠다.
작품은 제목처럼 부활하신 예수와 열두 사도의 성만찬 장면이 주를 이루고 있다. 또 그 주변에는 예수의 수난 장면을 묘사해 부활의 기쁨과 의미를 증폭시킨다. 이 작품은 보이론 미술(19세기 독일 낭만주의 화가들이 종교적 회화 작품과 함께 당시 쇠퇴했던 그리스도교 미술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던 미술 양식)의 영향으로 정적이고 기하학적인 인물 표현이 두드러진다.특히 부활하신 예수는 짙은 그림자와 함께 표현돼 조명이 꺼진 상태에서는 벽에서 나오는 듯한 신비스러운 분위기도 연출한다.
또한 일반적인 열두 사도의 만찬에서는 유다는 후광 없이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지만 알빈 신부의 작품에서는 모두가 후광에 싸여있는 것이 특징이다. 1975년에 그려진 작품은 당시 부통 신부(성 베네딕도회)가 활발하게 벽화 작업을 하고 있었음에도 알빈 신부가 손수 작업했다. 수많은 대안을 마련해 가며 배치에서 내부 디자인, 성미술에 이르기까지 가장 심혈을 기울인 작품 중에 하나로 꼽을 수 있다.
현재는 수도원 성당이 신축공사에 들어가면서 작품 원본은 더 이상 감상할 수 없다. 대신 새로운 성당의 소성당에 복사본으로 보관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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