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교황님은 마포대교를 통해 들어오셨습니다. 무전으로 교황님 위치를 알고, 그 때 그 때 상황을 원고로 써서 드렸어요. 신자들은 ‘비바 일 빠빠(교황이여, 영원하라)’를 외쳤고요.”
1984년 5월 6일. 당시 대본을 맡았던 한국순교자현양회 최홍준(파비아노?67) 회장은 그때의 긴박함을 이렇게 묘사했다.
여의도 광장에 입장해서 장애인의 손을 쓰다듬고 김수환 추기경과 제단 위로 올라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마저 생생하다. 최홍준 회장의 원고대로 시성식은 장엄하게 전개됐고 시성청원과 103위 약전 낭독, 모든 성인 호칭기도, 시성선언문 낭독, 환호가 이어졌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103위의 시성을 알리고 세계 교회 안에서 이분들을 공경하기를 명하니 팡파르가 울리고 비둘기가 날아올랐지요. 꼭 ‘103’마리였어요. 이때를 10시 27분 47초로 적어놨네요.”
에피소드도 있다. 본당 관계자들이 대회에 차질이 생길까 신자들이 화장실을 자주 드나들지 못하도록 그 전날부터 물을 많이 마시지 말 것을 당부한 것이다. 그날의 감동을 좀 더 느끼기 위해 새벽 6시부터 많은 신자들이 여의도 광장에 줄을 서기도 했다.
“직접 교황님을 보며 큰 대회를 치루고 나니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제 개인적인 신앙생활에도 큰 영향을 주었고, 순교자들의 시성을 통해 그분들의 삶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도 했고요.”
1981년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의 대본을 쓰면서 서울대교구와 인연이 닿았던 그는 1984년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대회 및 103위 시성식의 대본도 맡게 됐다. 여러 차례 큰 대회를 거치며 그는 본당 사목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하는 등 신앙생활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회상한다.
그는 순교자들의 시성은 그들의 영광이 아닌, 살아있는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분들의 삶은 우리를 각성하게 만듭니다. 우리들에게 시성의 참 뜻은 그러한 것이지요. 우리는 그분들의 신앙을 배우고 또 서로 일깨워줘야 합니다.”
또 새롭게 시복시성의 절차를 밟고 있는 증거자 최양업 신부와 124위 순교자들에 대한 관심도 빼놓지 않았다.
“한국 교회 신자들은 새로운 복자 탄생을 기원해야 합니다. 25년 전, 그 때 그 마음으로 돌아가 우리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을 온 마음으로 염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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