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구장님께서 주교품을 받으신 날이자 동시에 성 마티아 사도 축일인 뜻 깊은 5월 14일에 수원교구장좌에 착좌하셨습니다. 교구장 착좌에 대한 소감은?
- 교구장좌에 착좌한다는 것은 저 개인적으로 보면 책임과 역할이 크고 무거워지는 것이기 때문에 부담감이 크지만, 한국 교회 전체가 한마음으로 수원교구를 위해 기도하고 교구의 미래를 축복하여 준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착좌를 통해 교구장이 권세나 명예를 누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 마티아 사도 축일에 이 행사를 갖게 되는데, 뒤늦게 열두 사도의 대열에 들었던 마티아 사도께서는 용감하게 주님의 복음선포 사명을 성실히 수행하시다가 순교하셨습니다. 마티아 사도께서 생명을 바쳐 주님을 알리고 보여주었듯이 저도 남김없이 저 자신의 모든 것을 교구와 교구민의 영적 선익과 행복한 신앙생활을 위해 봉헌해야하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하고 있습니다.
▲ 교구장 승계 직후 특별서한을 통해 선임 교구장님께서 발판을 놓으신 ‘대리구제의 정착’과 ‘소공동체의 발전’ 그리고 ‘청소년 신앙심을 더욱 공고히 하는 일’이 현안 과제로 남아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과제가 앞으로 교구장으로서 계속 추진해 나가실 중점 사목방향이신지? 아울러 이러한 과제들 외에도 교구장님께서 특별히 생각하시는 교구 당면 과제가 있다면?
- 대리구제는 3년 밖에 안되었기 때문에 더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발전해야 합니다. 각 대리구의 신자수가 10만명 내외인데, 현재 대리구별로 특징과 성격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매우 바람직하며 신자들의 신앙생활과 활동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공동체와 청소년 신앙생활 활성화는 교구 시노두스에 따른 실천 사항인데, 교구 앞날을 가늠하는 중요한 요소이기에 계속 역점을 두어야 합니다. 이와 함께 교구민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순교자 신심을 일상생활 안에서 구현시키고, 사제와 신자들의 영성적 내실을 공고히 하며, 외적 복음화 차원에서는 지역선교, 해외선교, 사회복음화 사업, 생명과 환경 문제 등에 관심을 갖고 힘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수원교구는 신자수 72여만 명이라는 거대 교구로 성장을 거듭해왔고 아직도 여전히 성장세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양적팽창의 이면에는 본당 신설과 성전 건축, 쉬는 신자 증가 등 어려움도 있습니다. 교구장님께서 보시기에 교구가 고심해 개선할 문제는 무엇인지?
- 교구 관할 내에 신도시 개발이 수 십군데 이루어지고 있고, 이는 향후 2020년대 중반까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인구 유입도 지속될 것입니다. 본당신설에 따른 성전건축은 불가피할 것입니다. 이런 문제는 때를 놓치면 훗날 엄청난 정신적, 경제적 부담과 대가를 치러야 하기에 힘들더라도 기회를 놓치지 말고, 추진해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어떤 규모, 어떤 성전을 신축해야 하는가, 큰 땅을 확보하고, 대형성당, 화려한 성전을 지어야 하는가 하는 사항은 고려해야 합니다. 신자들의 부담감을 줄이는 방도를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새 본당 신설과 신자들의 영적 성숙은 함께 가야하니 교구와 사제들은 이 부분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교구의 양적성장에 더불어 내적 복음화, 내적 성숙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교구가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내실을 기하기 위해 순교 영성을 자주 강조하셨는데요. 교구 순교자들의 신앙을 표현한 교구장님의 문장도 이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교구민들이 순교 영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따라야 할지.
- 과거 200년 전 초기 교회와 오늘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근본 정신은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분위기의 외적 차이는 있지만, 그 본질적인 구조와 내용은 같다고 봅니다. 오늘날 사회적 출세, 명예, 학력, 지위, 부, 편리, 오락, 취미, 스포츠 등이 우리 정신과 마음을 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정신적, 윤리적, 영성적 가치는 사장되어 가고 있습니다. 선조 신앙인, 순교자의 삶, 세상을 보는 시각을 우리 후손들이 배우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삶에서 무엇을 먼저, 우위에 두고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입니다.
▲ 널리 알려진 학자주교님이십니다. 특히 몇 해 전부터는 ‘윤리신학총서’를 발간하고 계십니다. 총서는 추가로 나올 계획인지요. 아울러 어떤 내용을 구상하고 계신지.
- 그렇게 말씀하시니 송구스럽습니다. 저는 본래 책을 출간하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대학에 있었으면 책을 출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교구청에 오니 책을 읽고 연구하고 학술논문을 쓰기 어렵겠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래서 전에 발표했던 글들, 발표하지 않고 연구한 글들, 교구청에 와서 쓴 글들을 단순히 정리하는 중에, 각 분야별로 분류가 되어 총서라는 이름으로 현재 6권이 나왔습니다. 학문연구에 푹 잠기기에는 사정이 여의치 않지만 책을 많이 읽고 싶고, 틈나는 대로 사색의 글, 신학단상 등을 쓰고 싶습니다. 몇 권 더 출간하려는 계획은 갖고 있습니다. 바른 윤리의 척도나 규범, 환경 윤리 기업 윤리 등의 책을 내고 싶습니다만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 예수부활대축일 담화에서도 언급하셨듯이 오늘날 사회는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오히려 인간성은 퇴보되어 서로를 불신하는 불안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윤리관도 붕괴되고 있습니다. 경제도 어렵습니다. 이처럼 사회 전반에 걸친 위기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역할은?
-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상 재화, 물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잘 가르쳐주셨습니다. 물론 물질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그 물질은 인간답게 살고, 이웃 형제를 사랑하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수단이자 방편일 뿐입니다. 물질 자체는 결코 삶의 목적도, 삶의 궁극적 이유도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개인의 사유재산권은 사회법적으로 인정되고 보장되는 것이지만, 어떤 재화이든 사회와 이웃 형제의 것이기도 하기에, 개인의 절대적 소유권을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재화는 만인의 것이고, 사회의 저당권이 설정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재화가 나와 이웃, 세상과 사회를 위해 이롭고, 올바르게 사용될 때만 비로소 그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정신으로 그리스도인은 재화의 시각을 정립하고 사회의 경제적 평화와 정의를 실현하는데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신앙인들이 이 어려운 경제 위기의 때를 맞아 소외계층과 빈곤 계층에게 예수님의 나눔과 섬김의 정신을 몸으로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 매년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옷을 내어주시는 등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사랑도 몸소 실천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주민 사목이나 노동 사목 등 사회복음화를 위한 교회 노력에 대한 생각은?
- 무엇을 나누는 일은 함께 사는 세상과 이웃에 대한 예의와 상식에 속하는 사항일 것입니다. 소유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나, 곧 현금이든, 눈에 보이는 물건이든, 건강, 지식, 재능 등 모두 나눔의 대상입니다. 이를 교구의 행동 지표로 삼고 부단히 노력할 것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교회 내 활동, 곧 성사생활, 교리와 선교, 교회신심활동, 교회 내 행사 등만 잘하면 더 이상 할 것이 없다라는 인식을 갖기 쉽습니다. 나라와 사회 속에 존재하는 교회와 그 구성원인 신앙인은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등 모든 분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바로 사회교리의 실천입니다. 노동, 사회정의, 환경, 생명, 이주민, 교정, 경찰, 기관과 직장, 사회복지 등에 관심을 갖는 것은 우리의 본분입니다. 바로 사회의 모든 부분에 관심을 갖는 것은 교회의 근본적인 사명이고, 복음화 사업의 일부분이기에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 한국 교회 최초의 교구 신문인 ‘가톨릭신문 수원교구’가 현재 발행되고 있습니다. 교구장님께서는 2년째에 접어든 신문을 어떻게 보고 계신지요. 아울러 교구민들을 위한 신문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조언 부탁드립니다. 특별히 주교님께서 신문에 실렸으면 하는 기획물이나 연재물이 있다면?
- 지금까지 가톨릭신문 수원교구는 바람직하게 잘 운영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톨릭신문사와 관계자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더 바람직한 방향을 말씀드린다면, 교구민의 정체성과 신원의식을 공고히 하는 기획물과 신자들의 신앙심, 영성 심화를 위한 내용들이 더 깊이 있게 다루어졌으면 합니다. 그리고 정신적, 육체적, 영성적 고통과 시련을 신앙심으로 극복한 신자들의 감동적인 삶과 체험 등을 다루면 매우 유익할 것입니다.
▲ 교구장님께서는 사제단과의 일치를 위해 더욱 많은 관심과 애정을 쏟을 것이라고 자주 강조하셨습니다. 교구 사제단에게 당부말씀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교구장 착좌를 한마음으로 경축할 교구민들에게 하실 말씀이 있다면?
- 교구 공동체는 큰 가정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구의 원만한 성숙과 발전은 건강한 가정과 본당 공동체에 달려있습니다. 사제들이 지구 공동체, 대리구 공동체에 더욱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로 하나 되는 일치와 화목을 보여주기를 기대합니다. 신자들은 가정, 나아가 반, 구역, 지역 공동체의 활성화를 통해 이웃 형제를 잘 이해하는 가운데 친교와 사랑을 나누며, 특히 기도생활, 선교, 쉬는 교우 회두, 사회 봉사, 본당의 사목 목표 이행 등에 힘을 모으며 생동감 있는 활동을 해야 할 것입니다. 사제들과 신자들이 화해와 일치를 이루며 기쁘고 행복하게 지상 순례의 여정을 가시도록 저도 힘을 보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영광 받으시고, 그분의 정의와 평화가 숨 쉬는 세상, 주님의 얼이 충만한 친교와 나눔의 세상을 만들고,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는 교구 공동체 건설에 교구민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참여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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