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부터 15일까지 이뤄진 교황의 성지 순방은 한편으로는 성경에 나오는 종교적이고 역사적인 땅을 방문하는 종교적 순례이기도 하지만, 또한 여러 종교가 그 거룩함을 공유하고 있는 성지 방문을 통한 종교간 대화의 기회를 마련한 일이었다. 보다 현실적으로는 성지를 둘러싼 국제 사회에서의 정치적 균형을 가늠하게 하려는 한 가지 시도이기도 했다.
오랫동안 뿌리내린 분쟁과 갈등의 땅에서 교황의 방문과 평화의 메시지가 당장의 성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뿌리 깊은 분쟁의 땅, 요르단과 이스라엘, 그리고 팔레스타인 땅에서 빚어지고 있는 비극적 역사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평화의 메시지만은 분명하게 전달됐다고 할 수 있다. 그것 역시 하나의 커다란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교황의 성지 순방은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인간의 역사 안에 개입하신다는 것이며, 아울러 모든 믿는 이들은 자신의 종교와 믿음을 통해 전쟁과 불신, 오해로 점철된 땅에서 선익을 위해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 그리스도인들의 희망, 평화는 가능하다
이에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부터 얻은 희망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교황은 예루살렘에서 “텅 빈 무덤은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실 수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며 “평화는 참으로 가능한 것이며, 우리는 오랜 증오를 벗어던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교황이 예수 그리스도가 세례를 받은 요르단강, 가브리엘 천사가 성모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수태를 알려준 작은 동굴, 그리고 골고타 언덕을 순례하는 이번 성지 순방 여정의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교황의 성지 순방은 단지 종교적 순례에 그치지 않고, 고통 받는 성지의 그리스도인 공동체로 하여금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기에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격려하고, 그들을 보고 있는 다른 종교인들의 믿음을 더욱 강화해준 것이다.
- 종교간 대화
종교간 대화의 측면에서, 교황의 성지 순방 여정은 요르단과 이스라엘에서의 두 가지 국면으로 전개됐다.
우선 이슬람 국가이면서도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의 권리를 인정해온 요르단에서, 교황은 극단주의를 억제하고 문명 간의 연대를 건설하려는 요르단에서의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교황의 요르단에서의 연설은 지난 2006년 독일 레겐스부르크에서의 주제와 마찬가지로 신앙과 이성의 문제를 다루면서 이성에서 유리된 종교는 ‘이념적 조작’에 취약할 수 있음을 강조했지만 좀 더 조심스러웠던 것으로 보인다.
교황의 접근 방법은 온건한 이슬람들에게 다가가려는 것이었는데, 예를 들어 교황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의 근본적인 모순을 지적할 때, 최근 수년 동안의 이슬람권에서 발표된 메시지들을 인용했다.
교황의 종교간 대화의 두 번째 국면은 이스라엘에서 보다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11일 이스라엘을 방문한 교황은 먼저 600만 명의 유다인이 살해된 대학살과 반유다주의를 비난하는 것으로 순례 여정을 시작한다. 같은 날 교황은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방문해 학살에서 살아남은 이들을 만나고 희생자들의 비극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균형과 호소
이러한 모습들은 유다인들과의 우호적 관계의 이미지를 드러냈다. 교황의 종교간 대화의 만남은 이날 이슬람의 이스라엘에 대한 비난, 그리고 그로 인한 유다교 대표들의 퇴장으로 인해 어느 정도 엇나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과 분쟁이 성지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모습은 사실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교황은 한편으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처지에 공감을 표시하고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그들의 권리에 대해서 강력하게 지지의 뜻을 나타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테러의 문제에 대해서 지적하고 증오와 분노의 감정을 극복하기를 호소하고 있다.
교황은 이스라엘이 세워놓은 장벽을 비난하면서 이를 이번 순방에서 목격한 ‘가장 슬픈 장면’의 하나로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를 나타내는 비극적 상징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교황은 비난의 어감을 주는 용어를 삼가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이 소리 높여 비난하는 ‘억압’보다는 이 장벽이 세워지게 된 ‘적대감’에 초점을 맞췄다.
- 평화의 호소와 그리스도교적 희망
교황의 성지 순방은 한 마디로 평화에 대한 절실한 호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얻는 그리스도교적 희망의 메시지를 통해 갈등과 분쟁의 땅에 그리스도의 평화와 사랑이 다시금 회복되기를 바란다는 간절한 메시지로 요약된다.
예수가 죽은 곳으로 믿어지는 예루살렘의 예수 성묘 성당에서 교황은 순례의 마지막 날인 15일, 기도를 바친다. 교황은 예수의 텅 빈 무덤이 바로 우리에게 희망을 던져 준다고 강조했다.
“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해줍니다. 또한 쓰린 기억은 치유될 수 있고, 증오와 적대감의 쓰디쓴 열매는 극복될 수 있으며, 정의와 평화, 번영과 협력의 미래는 가능합니다.”
세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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