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퇴근 무렵, 온종일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온다. 멍해지는 머리를 한번 흔들고, 버스 스피커 소리에 관심을 돌려본다. TBN 한국교통방송 인천본부 라디오(FM 100.5MHz)에서 들려오는 한 부부의 닭살스런 대화. 대뜸 “아니 저 닭살 부부는 누구야”라는 생각부터 든다.
최 : “30년을 넘게 함께 살아도 이름만 들어도 여전히 가슴 설레는 사랑하는 집친구 김효숙씨를 소개합니다.”
김 : “안녕하세요, 방금 저를 소개해준 저의 믿음직한 남편 최경균씨를 소개합니다. 저희는 ‘매리지엔카운터(ME)’라고 불리는 부부일치운동을 하는 부부입니다.”
라디오 목소리의 주인공은 ME 인천협의회 대표 부부였다.
김 : “전 사실 남편보다 말을 부드럽고 이성적으로 잘 한다는 우월감이 있어요. 얼마 전 남편친구들과 가진 부부모임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남편이 술에 좀 취한 것 같아 제가 말을 막고 나서서 결론만 얘기했거든요. 남편 표정이 좀 좋지 않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당신이 혼자 그렇게 나서면 나는 뭐가 되냐’고 불평하는 거예요. 전 저대로 ‘당신은 술 취하면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그래서 내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말을 끊은 건데 정말 속이 좁구나’하며 비난했어요. 알고 보니 남자들끼리 어릴 적 추억을 곱씹으며 말하는 것을 저는 우월감으로 인해 잘 듣지 못한 것이지요.”
최 : “저희는 상대방의 말에 호응해주는 방법으로 ‘구나타령’을 추천해요. 예를 들어 퇴근한 저에게 아내가 ‘여보, 나 오늘 정말 화가 많이 났다는 거 아냐. 글쎄 옆집 아줌마가 어쩌고저쩌고…’라고 하면 제 입에선 ‘거 왜 어른들이 아이들처럼 싸우고 그래?’라는 말이 나오려 하죠. 하지만 대신 ‘그래? 당신 참 화났었겠구나, 기분 나빴겠구나’로 호응하면 아내는 자신의 속상한 마음을 먼저 알아준 것을 고마워하며 먼저 태도 변화를 보여요.”
평소 부부 간 대화는 말다툼으로 이어지기 일쑤다. 별 일 아닌데도 싸웠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짜증을 낳고 잘 풀지 못하면 앙금도 쌓여간다.
남·녀의 사고나 성향이 서로 다른 건 잘 알고 있다. 그런데 한 번 살아보란 말이지. 일상에서 부대끼는 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가. 게다가 요즘 아이들도 옳고 그른 것보다, 나한테 좋은가 싫은가부터 따진다. 아이들은 부모가 ‘시키는 대로’가 아닌 ‘하는 대로’ 따라한다는 걸 자꾸 잊는다.
그런데 이 부부의 대화, 어째 귀가 솔깃해진다. 내용도 신혼부부의 대화와 닮아있다.
김효숙(사베리나)·최경균(안드레아)씨 부부는 지난 4월부터 매주 화요일 오후 7시15분 인천교통방송 ‘달리는 라디오 교통방송입니다’에서 ‘가정은 우리의 희망, 여보 사랑합니다’ 코너를 진행한다. ME 운동의 노하우를 통해 우리 사회가 더욱 건강해지는데 도움을 주자는 PD의 제안에 호응한 결과다.
부부가 대화하자고 마주하고선 결국 말다툼이 되는 일상에서부터 ‘도대체 내가 당신이랑 왜 살고 있지’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까지 직접 부부가 방송 주제를 정한다고. 방송을 듣다보면 ‘큭큭’ 웃음보도 자주 터진다. ‘내 이야기인데’하는 공감대 형성 때문이라고.
가톨릭적인 색채를 가급적 뺐다. 어려운 이론이나 일방적인 상담형태에서도 벗어났다. 하루하루 부부로 살며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생활을 나눈다. 결혼 31년차, ME 운동 22년차 부부의 진솔한 입담이 ME 운동의 저변을 확대하고 간접적으로 가톨릭교회를 알리는 전령사가 됐다. 방송을 듣고 공감하는 부부들의 마음도 더욱 말랑말랑해져간다.
김효숙·최경균 부부가 방송에서 보너스를 덧붙인다.
“매일 부부가 함께할 수 있는 구호를 추천해 드릴게요. 함께해보세요. ‘당신멋져!’”
당당하게 살자!
신나게 살자!
멋지게 살자!
져주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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