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니임~.”
“그래, 니들이 고생이 많다~.”
5월 12일, 수원가톨릭대학교에 TV 개그 프로그램을 빼닮은 ‘신학교의 원로신부님’이 연출됐다. 원로사제들과 신학생 후배들이 만남의 자리를 가진 것.
신학생들에게 원로사제는 시골집에 계신 할아버지 같고 원로사제들에게 어린 신학생들은 귀여운 손자를 만난 듯했다.
오후 4시30분, 총장실에 모여든 원로사제들은 총장실을 사랑방 삼아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수원가톨릭대학교 개교 이전부터 사제생활을 시작한 원로사제들에게 개교 25주년, 청년이 된 신학교의 변화와 발전이 대견하기만 하다.
저녁기도가 시작되고 원로사제들은 학생들과 함께 저녁기도를 드렸다. 김병렬 신부는 “처음 신학교 1학년으로 들어왔을 때 맨 뒷자리에 앉아 ‘난 언제 선배가 돼서 앞자리에 앉을 수 있을까’ 까마득해 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다시 뒷자리로 물러나게 됐어”라며 미소를 띄웠다.
식사 후 자유시간, 산책하던 원로사제가 신학생에게 말을 건넨다. “자네는 몇 학년인가? 요즘 힘든 점은 없고?” 따뜻한 할아버지의 모습이다. 원로사제는 신학생의 어깨를 가만히 두드려준다.
오후 7시50분, 원로사제의 무용담(?)을 듣는 시간이 되자 신학생들의 눈빛이 더욱 초롱초롱해졌다.
시골집에서 잠자리에 들기 전 이불을 뒤집어쓰고 할아버지가 들려주시는 이야기를 듣는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기울인다.
이날 모인 수원교구 원로사제는 심형택 신부, 최윤환 몬시뇰, 이명기, 장덕호, 김병, 임충승, 주인배 신부 등 7명. 이들 원로사제들은 어린 묘목들을 위해 자신의 촘촘한 나이테 속 지혜를 꺼내 보여줬다.
심형택 신부는 우리나라 교회에 포콜라레 운동을 처음 소개한 신부로서 영성운동 안에서 이 시대의 신학생이 배워야 할 것들을 이야기했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는 바보가 되기 위해 자원해서 이 길을 택한 것입니다. 이 길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면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보가 되라는 말은 미련한 사람이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이, 땅이 되시며 모범을 보여주신 것처럼 ‘사랑의 예술’을 실천하세요.”
이명기 신부는 자신의 사목생활을 들려줬다. 이 신부는 1988년 올림픽을 전후해 성남 수진동 판자촌 철거 당시를 회상하며 “하느님께서는 어려움이 있을 때 오묘하게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어려움이 닥치면 어떻게 하든지 해결해주시는 분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언제나 하느님께 의지하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장덕호 신부는 신학생들을 위한 덕담을 전한다.
“우선 오늘 와보니 젊은이 냄새를 폴폴 풍기네요. 여러분들이 사제의 길을 들어서준 것이 참 감사합니다. 사제의 길은 가장 행복한 길입니다. 사제의 길에는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저 예수님을 잘 믿고 순순히 따르면 (사제로서) 잘 살 수 있을 겁니다.”
김병렬 신부는 사제로서 갖춰야할 덕목을 소개했다.
“주님에 봉헌하는 사제들은 내 개인적인 취향과 욕구를 버려야 합니다. 또한 사제는 지도자로서 하는 행동과 말 등 많은 점에서 조심해야 합니다. 어려울수록 예수님의 향기를 품어야 합니다. 물론 이렇게 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여러분들도 그렇게 해서 많은 신자들이 따를 수 있는 사제가 돼야 합니다.”
임충승 신부 역시 사제로서의 지혜를 풀어놓았다.
“저는 여러분에게 사제가 되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도 신부가 되면 고개를 숙이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주인배 신부는 몇 달 전 수술을 받아 건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신학생들을 위한 자리에는 꼭 참석하려는 의지를 보여줬다.
“어려서는 불교집안이라 집안의 반대가 매우 심했습니다. 집안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사제에 대한 갈망은 높아져만 갔고 결국 49세라는 늦은 나이에 신부가 됐습니다. 만약 하느님께서 나를 버려 신부가 되지 않는다 해도 신부처럼 사는 것이 사제가 되는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주 신부는 또 신학생들에게 항상 목표를 향해 도전하는 사람이 되라고 당부했다.
“저는 지금도 스키를 즐겨 탑니다. (스키점프 사진을 보여주며) 얼마 전 스키점프에 성공했습니다. 스키점프는 단순히 스키를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도전의식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스키는 신학교입니다. 이제 여러분도 신학교라는 스키를 타고 날아오르십시오.”
마지막 최윤환 몬시뇰은 수원가톨릭대학교 재직 당시를 회상하며 개교 25주년을 맞는 수원가톨릭대학교에 대한 격려도 잊지 않았다.
“오랜만에 학교에 와보니 감개무량합니다. 신학교가 없었다면 교구 발전도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수원가톨릭대학교에만 15년을 있었습니다. 신학교에서만 계속 재직하면서 모든 것을 바친 신학교가 벌써 25주년이 됐습니다. 앞으로 우리 신학생들이 오늘 신부님들께서 말씀하신대로 긍지와 도전정신을 갖고 살길 바랍니다. 또한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신념을 갖고 생활하십시오. 여러분이 하고자 하는 일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사제가 돼서도 기도생활을 놓지 않길 바랍니다. 기도생활은 하느님과 만나는 일입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