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자 최양업 신부와 124위 시복시성’은 103위 시성 25주년이 남긴 가장 가시적인 과제다. 1984년 5월 20일자 가톨릭신문을 보면 김남수 주교(당시 200주년 기념위원회 위원장)는 ‘시성식 후 우리들의 자세’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의 또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103위 성인들에 앞서 이 땅에 교회를 창립하셨던 분들의 시복시성 추진일 것이다. 성인들을 공경하며 그분들의 도우심을 청하는 우리의 기도생활이 창립 성현들의 시복운동과 직결된다면 창립 성현들의 시복시성도 우리의 기대보다 훨씬 빠르게 이뤄질 줄로 믿는다.”
▤‘시복시성’이라는 과제
김남수 주교의 말대로 1984년 시성된 103위는 모두 기해(1839), 병오(1846), 병인(1866) 박해 때 숨진 순교자들이다. 103위 순교자 이전 순교자 즉, 신해(1791)와 신유박해(1801) 순교자들은 아직 시복되지 못한 것이다. 교회사 관계자들은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복자가 못 된 상황에서 아들과 손자들의 시성이 먼저 이뤄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김진소 신부(호남교회사연구소 소장)는 이러한 상황의 원인을 1831년 조선교구 설정과 함께 프랑스 교회 통치 아래 놓였던 한국교회사에서 찾는다.
그는 “기해박해와 병인박해 순교자들 중 프랑스 선교사들이 포함됐으므로 프랑스 교회에서 시복운동을 추진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프랑스 선교사들이 한국 교회를 통치하게 된 1831년 이전 초기교회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시성운동은 한국 교회의 과제로 남겨졌다”고 말했다.
이번 시복시성 절차를 밟고 있는 124위는 1791년 신해박해 3위, 1795년 을묘박해 3위, 1797년 정사박해 8위, 1801년 신유박해 53위, 1814년 1위, 1815년 을해박해 12위, 1819년 2위, 1827년 정해박해 4위, 1839년 기해박해 18위, 1866년~1868년 병인-무진박해 19위, 1888년 1위로 대부분 신유박해 전후의 순교자들이다.
이 가운데는 103위 성인들과 가족관계를 이루고 있는 경우도 있다. 124위 가운데 포함된 정약종은 기해박해 때 순교한 유조이의 남편이며 정하상과 정정혜, 정철상 성인의 아버지다. 정철상 성인의 장인은 124위 중 한 위인 홍교만이며 그의 아들 홍인도 124위 시복시성 대상 중 하나다.
현계흠 순교자도 현석문과 현경련 성인의 아버지다. 또 김진후와 김종한은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와 작은 할아버지며, 최경환 성인의 아내이자 최양업 신부의 어머니인 이성례 또한 시복시성 대상자에 올라있다.
한국 교회의 103위 시성은 25년이 지난 지금, 이전 순교자들인 124위 시복시성에 이 같은 당위성을 부여한다.
김남수 주교는 ‘시성식 후 우리들의 자세’에서 “창립 성현들의 시복운동은 103위 시성과 직결돼 추진해야 마땅하다”며 “성인이 되신 후손들의 전구로써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시복시성이 더욱 쉽게 성취되겠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시복시성 추진 어디까지 왔나
주교회의 200주년 기념사업위원회와 각 교구에 의해 진행됐던 순교자들의 시복시성 노력은 1997년 주교회의 추계 정기 총회에서 ‘통합 추진’이 결정되며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후 2001년 3월 주교회의 춘계 정기총회는 시복시성 통합 추진의 청구인(추진 주체)을 ‘주교회의’로 명시하고 담당 주교에 마산교구장 박정일 주교를 선출했다. 같은 해 10월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가 구성되고 ‘하느님의 종’ 선정을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2002년 제1차 시복시성 추진 대상자 124명 확정과 신학위원, 역사위원 등이 임명됐으며 2003년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의 한글 약전이 발간된다.
2003년 10월 124위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 심사에 대해 시성성으로부터 ‘장애없음’을 통보받은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는 재판부를 구성한다. 2004년 시복 법정이 열리고 그해 9월 증거자 최양업 신부의 시복시성을 위한 청원인이 결정됐다.
지속적인 시복 재판과 함께 2005년 시복 자료집이 발간됐으며 2006년 2~8월 현장조사를 마치고 시복 조사 회기 문서를 정리, 2009년 5월 20일 ‘증거자 최양업 신부와 124위’ 시복 자료를 교황청 시성성에 제출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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