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가 올바른 ‘다문화 사회’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의식 재고가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가톨릭교회는 공동체정신과 사랑 실천 인프라를 바탕으로 다문화 가족들이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데 구심점이 돼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주교회의 가정사목위원회(위원장 황철수 주교)가 5월 19일 제주 동광성당에서 ‘다문화 가정에 대한 현실과 교회의 역할’을 주제로 연 세미나를 통해 제기됐다.
가정사목위는 최근 우리 사회가 다문화 사회로 들어서면서 겪는 갈등과 문제점에 대한 해결과 사목적 대안 모색을 위해 이번 세미나를 마련했다.
2008년 현재 국내 체류하는 외국인 수는 전체 인구의 2.3%로 급증, 한국은 다문화 사회를 향해 빠르게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에 대한 편견과 폐쇄적인 시각으로 통합과 공생의 한계가 드러나고, 결혼이민자들의 인권 침해와 차별 등은 더욱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른 것이 현실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성비 불균형과 저출산 문제, 세계화 안에서 나타난 새로운 결혼 문화의 영향으로 최근 결혼이민자들이 급증해왔다. 게다가 다문화 가정 2세들의 사회부적응 문제 또한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할 시급한 과제로 제시된다.
이에 따라 교회가 더욱 능동적으로 이주자들을 교회 구성원으로 맞이하고, 소수민족을 위한 사목적 배려를 실현해야 한다는 요청이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세미나에서는 ‘우리나라의 다문화 가정’과 ‘제주도 다문화 가정의 현실’을 주제로 한 발제와 논평, 질의응답 등이 이어졌다. 주제발표에는 서해정 경기도 가족여성연구원 위원과 홍기룡 제주외국평화공동체 사무처장이, 논평에는 최병조 수원교구 이주사목 전담 신부와 김민호 제주대 교수가 각각 나섰다.
특히 세미나에서 발제?논평자들은 “우리 사회에서는 ‘다문화’ 개념에 대해 편협하거나 그릇되게 이해하는 문제점이 있다”며 “올바른 다문화 사회는 우리 문화에 동화나 일방적인 수용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원문화와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타문화를 수용하는 것이며, 다문화 사회로의 진입은 우리 스스로에 대한 발견과 성장의 과정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아울러 이날 세미나 논평에 나선 최병조 신부는 “다문화 사회 정착을 위해서는 올바른 홍보와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위한 특별교육, 하나의 세상을 만든다는 공동체 모델 제시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논평자 김민호 교수도 “교회는 이민자들에 대한 첫 환대(급식소, 진료소 등)를 넘어 이민자들이 우리 사회의 어엿한 시민으로서 권익을 지켜나가고 자립할 수 있도록 완전한 의미의 환대를 실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가정사목위 위원장 황철수 주교는 세미나 인사말을 통해 “국내 거주 외국인은 더 이상 ‘외국인’이 아니라 우리와 다른 문화권에서 온 이웃”이라며 “이제 차별이 아닌 차이를 인식하고 같은 하느님 백성으로서 더불어 살아가는 시각을 정립할 때”라고 강조했다.
■ 제1발제 - ‘우리나라의 다문화’
“다양한 문화·소수 권리 인정을”
다문화 사회는 인종적, 민족적, 문화적으로 다양한 국가 또는 동등한 여러 문화들이 공존하는 사회다. 따라서 다양한 문화를 인정하고, 소수의 권리를 존중하는 모습을 지녀야 한다.
한국에서 다문화라는 용어는 1980년대 말 이후 결혼이민자가 급증하면서 정책적 대응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처음 논의됐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사용되는 ‘다문화’는 다양한 문화라는 의미보다 한국 문화와는 ‘다른 문화’라는 의미가 지배적이며, 좁게는 제3세계 여성들과 결혼으로 맺어진 가정을 일컫는 말로 통용된다. 2008년 현재 한국은 체류 외국인 비율이 2.3%를 넘어서며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특히 2000년대 이후 한국인 남성과 외국인 여성의 결혼은 전체 결혼의 10%를 넘어서는 일반적인 결혼 형태로 자리 잡았다. 동시에 결혼이민자의 이혼 급증과 인권 침해와 생활 적응상의 어려움, 사회문화적 편견과 고립, 자녀문제 등의 문제점이 나타났다. 아울러 외국인 근로자들의 노동권과 사회권, 고용허가제의 안정적 정착 등과 관련한 해결 과제도 여전히 존재한다.
사회 변화에 발맞춰 ‘한국인’에 대한 정의도 변화돼야 한다. 다문화를 사회통합에 대한 진정한 의미로 재해석하며, 다문화가족지원법도 보완해야 한다. 나아가 이주여성들이 가정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에서도 능력을 개발하고 같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체제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서해정 위원(경기도 가족여성연구원)
■ 제2발제 - ‘제주사회 다문화 정책의 한계와 대안’
“이주 여성 역량 발휘할 기회 필요”
우리 사회는 여성 결혼이민자들을 한 ‘여성’이라기보다는 ‘며느리’ ‘아내’ 등의 정체성으로만 바라보는 면이 있다. 게다가 현재 각 시·도 등이 운영 중인 대부분의 지원 프로그램도 적응 훈련 프로그램이 주류를 이뤄, 이주여성들의 문화를 존중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결혼이민자들을 우리와 함께 살아갈 주체로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 결혼이민자들은 한 시민으로 살아가기 어렵다. 기본권인 공공서비스와 건강권, 다양한 정보 접근권조차 실현하는데 큰 한계를 안고 있다.
올바른 다문화 정책을 펼치기 위해 우선 여성 결혼이민자들을 지역의 새로운 문화 창조자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그들이 각자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지역사회의 다문화 정책과 교육 정책 안에서 소수민족들의 언어를 보호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다중언어 정책을 펼칠 것을 강조한다.
특히 ‘공동체적으로 더불어 살기를 지향하는 운동’의 축으로 국경 없는 다문화 존(Zone)이 구축돼야 한다. 다문화 존은 지방과 세계를 연결하는 중요한 교두보 역할을 할 것이다.
무엇보다 교회는 다문화 가정을 위한 소그룹 모임의 역할을 할 수 있고, 헌신적이며 사랑을 가치로 두고 훈련된 자원봉사자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올바른 다문화 사회를 정착시키는데 대안이 될 수 있다.
홍기룡 사무처장(제주외국평화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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