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라면 누구나 동병상련의 상태에서 서로간의 ‘연민’(compassion)을 주고 받아야 한다는 본능적 성향을 알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연민은 맹자가 말한 사단(四端) 중 측은지심(惻隱之心, 이웃들을 사랑하여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 연민이라고 하는 조화로운 삶을 가능케 하는 성향은 넓은 차원에서 사회적 자비(social mercy)라는 성향을 낳는다. 자비는 더 나아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돌봄과 관심을, 우리의 친절과 용서를 주위에서 만나는 개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사회와 모든 민족 전체에까지도 확장해나갈 태세를 갖추게 해준다. 그래서 이웃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한 사람은 이제 자신의 연민을 사회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기근, 반인륜적 범죄, 자유의 억압, 인간성 말살 등은 인간의 자비가 얼마나 이 세상에 끝없이 넓게 퍼져나가야 하는가를 드러내 준다. 인간이라면 연민의 감정을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그 성향을 사회에 드러내지 않기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연민의 성향을 사회적 차원으로 확대하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참으로 많은 불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지역감정도 그 중 하나다.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를 갈라놓고 싸우는 것은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언제까지 우리 국민이 정치권의 전략에 휘둘려야 하는가. 연민의 마음을 확장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도 우리는 망국적 지역감정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자비는 더 나아가 사형문제, 생명문제 등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가져오는 기준이요 잣대이기도 하다.
하느님은 모든 인간의 마음에 연민의 성향을 심어 놓으셨다. 인간 개개인은 그 연민의 성향을 사회적 자비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전쟁과 범죄, 기아는 모두 연민이 사회적 자비로 확산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연민은 필연적으로 평화를 낳는다.
더 나아가 인간 개개인의 ‘역량’(competence)은 책임 있고 효력 있는 ‘사회적 활동’(social action)을 낳는다. 인간 개개인은 역량을 통해 사회의 모든 이들을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하느님이 마련하신 사회적 정의와 평화, 자비라는 요청들을 이행할 수 있게 해 준다. 역량이 인간 개개인의 성향을 사회적 차원으로 넓혀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이 땅에서 생활하셨는가를 생각해 보자. 예수님께선 공생활 3년동안 누구보다도 사회적 차원의 활동을 많이 하셨다.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이야기하고, 의견을 교환했다. 그때마다 예수님은 어떠했는가. 늘 정의로웠다. 하느님의 뜻에 합치된, 정의로운 삶을 살았다. 이웃을 늘 연민의 눈으로 바라봤다. 그 사회적 행동의 결과가 자비로 나타났다. 그 결과 예수가 가는 곳에는 늘 평화가 있었다.
당신은 정의로우셨고, 늘 평화로운 방법으로 행동하셨다. 그리고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고 자신을 비난하는 혹은 자신에 대해 의구심을 가진 율법학자들을 만났다. 그리고 비유 등을 통해 열성적으로 복음을 전한다. 말끝마다 꼬투리 잡는 사람들을 만나는 예수님의 이러한 태도에는 진정한 영성의 경지가 느껴진다. 예수는 율법학자들을 마음 밖으로 내치지 않는다. 진정으로 자비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함께한다.
예수의 그 사회적 차원의 활동은 넓게 그리고 깊게 퍼져서 지금까지 우리에게 이어져 내려 오고 있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은 이미 돌아가셨다. 하지만 그분의 사회적 활동은 지금도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다. 우리의 영성 삶도 이래야 한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그리스도적인 사회 활동 영역에서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성장하기를 원하신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예수님은 신앙인들에게 ‘그리스도적인 사회활동’을 하기를 원하신다. 정치인의 사회활동이 아니다. 경제인의 사회활동이 아니다. 인권운동가, 환경운동가들의 사회활동도 아니다. 예수님은 당신과 같은 사회활동을 하기를 원하신다.
하지만 우리의 ▲올바른 사회활동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에 형성적으로 미리 심어 놓으신 성향들을 사회적으로 확대 실현시키는 사회활동 ▲그리스도적 사회활동을 가로 막는 것이 있다. 우리의 올바른 영성 형성(삶 안에서 영성을 실현 혹은 구현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있다. ‘오만함’이 그것이다. 오만형태는 사회적 차원에서 상대방에 대한 비방과 보복 그리고 폭려을 넘어 전쟁과 살인이라는 생명의 대립 형태를 출현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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