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군종 사제 연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김포공항에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 약 1시간20분 정도 걸려 의정부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거기서 25사단 신산리로 가는 버스 정류장을 찾아 무거운 여행용 가방을 끌었다. 마침 저녁 8시 반경에 적성으로 가는 25번 버스가 있었다. 몸도 피곤한데 그냥 택시나 타고 갈까? 하고 잠깐 고민을 했으나, 휴가 복귀하는 병사들이 주로 애용하는 버스를 한 번 타고픈 생각이 들어 그냥 버스를 타고 가기로 결심했다. 사실 요금도 1300원이라 택시비보다는 훨씬 싼 점도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의정부 시외버스터미널은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1990년 11월! 경기도 양주군 봉양리에 있는 사기부대로 자대 배치를 받았다. 양평 결전교육대에서 훈련을 마치고 보충병으로 일주일가량 생활하다 늦은 저녁 시간에 부대에 도착했다. 부대로 가는 도중 의정부를 지나가게 되었다. 의정부라는 곳이 경상도 청년에게는 너무나 낯선 곳이었다. 그러나 27개월 병 생활을 하면서 의정부북부역과 의정부 시외버스터미널은 고향으로 가는 첫 출발점이라 언제나 기분이 한결 좋아지는 곳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인생에 있어 특별한 장소와 기억에 오래 남는 곳이 있지 싶다. 나에게 있어 20대 나이에 추억의 장소는 의정부북부역과 그 주변이다. 특히 이름도 재미난 ‘부대찌개’는 휴가 출발 때 먹는 든든한 음식이었다. 이등병 휴가, 일병 휴가, 상병 휴가, 병장 휴가, 혹여 포상휴가를 떠날 때마나 언제나 ‘부대찌개’를 먹었다. 그때는 그 음식 왜 그리 맛나든지!
제대를 하고 난 뒤 약 20년 뒤에 다시금 청년시절 군 생활 동안 부대 복귀를 위해 버스를 기다리던, 그 곳에 이젠 40대가 되어 군종신부로서 부대가 아닌 사제관으로, 비룡성당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타니, 저절로 신학생으로서 병사생활과 현재 나의 생활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 속으로 자연스레 빠져들게 되었다. 병 생활 때에는 고향 대구로 가는 휴가 출발과 부대 복귀를 위한 버스정류장이었지만, 이제는 군종사제로 사목자로서 성당으로, 사제관으로 가는 길을 가는 변화된 나의 모습 속에서 ‘나는 지금 어떤 길을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해본다. 많은 생각들 중에 좋으신 주님께서 베푸신 선물이 하나 생각났다.
사실 군 입대를 앞두고 학부 4학년 때 매일같이 드린 기도와 소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전방에 있는 어느 부대를 가든 상관은 없으나, 군 생활 중에 매주 주일 미사만은 꼭 참례할 수 있었으면 하는 기도였다. 정말이지 간절히 청한 기도로 기억된다. 훈련병 시절 사단에 군종신부님이 계시지 않아 몇 번의 공소예절을 드리는 것 말고는 주일미사는 꼭 드릴 수 있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때 28사단 신부님께서(박병주, 조영오 신부님) 매 주일 거르지 않으시고 “대건공소”에 오셔서 미사를 집전해 주신 덕분이다.
사제 생활의 첫걸음을 “오늘도 내일도 또 그 다음날도 계속해서 나의 길을 가야한다.”(루카 13, 33)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시작했다. 오늘도 걷고 있는 군종 사제의 길은 예수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것, 곧 수많은 병사들과 함께 드리는 “미사의 길” 아닌가 싶다.
군종신부들이 사목하는 각각의 사단에는 본당과 많은 공소들이 있다. 공소 성당에는 병사신자 위주로 신앙생활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보통은 주일미사와 성모의 밤과 같은 신심행사 등이 거행된다. 미사를 드리고 초코파이 하나로 간식을 대신하지만 미사가 드려지는 공소 공소마다 젊은 신앙인들이 주님의 든든한 제자로 살고 있다.
미사를 간절히 원하는 한 명의 병사라도 있으면, 오늘도 그를 향해 미사 가방을 챙겨 달려가고 싶다.
군복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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