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의 순교자, 백색 순교자로 불리는 증거자, 한국의 두 번째 사제 최양업 신부.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와 함께 시복시성 추진 중인 ‘증거자 최양업 신부’의 법정도 5월 20일 폐정됐다.
가톨릭신문은 ‘증거자 최양업 신부’의 시복시성을 기원하며 124위 기획과 함께 ‘오늘날 교우들 보아라’를 주제로 최양업 신부에 대해 조명한다.
이번 기획은 최양업 신부의 여러 부분 중 최 신부가 직접 기록한 ‘서한’을 요약, 이를 중심으로 당시의 상황과 최 신부의 행적, 삶, 신앙 등을 이야기한다. 또 최 신부의 서한이 기록된 곳으로 추정되는 각 서한지에 대해 논의하고 최 신부의 사목활동 범위도 함께 알아볼 예정이다.
가톨릭신문의 기획 ‘오늘날 교우들 보아라’는 서한의 새로운 내용과 역사적 배경 등을 밝히기보다 서한을 읽고 최양업 신부를 이해하는데서 출발한다. 또 이 기획을 통해 오늘날 한국 교회 신자들은 최양업 신부의 삶은 물론,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교우들에게 전하는 최양업 신부의 메시지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최양업 신부의 서한이란?
‘한국의 바오로 사도’라고 불릴 만큼 여러 서한을 작성한 최양업 신부는 신학생이 었을 때인 1842년 4월 26일부터 선종하기 전해인 1860년 9월 3일까지 총 19통의 서한을 작성했다.
서한들은 최양업 신부가 신학생 시절의 스승 신부들에게 보낸 것으로 모두 라틴어로 작성돼 그의 라틴어 실력이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서한 중 아홉 번째 서한인 ‘1845년 9월에 스승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것’은 유실돼 찾을 수 없으며 말레이 반도의 페낭 신학교로 가서 공부하고 있던 조선인 신학생들에게도 여러 차례 서한을 보냈지만, 이들 또한 남아있지 않다고 전한다. 현재 남아있는 18통의 서한은 파리 외방전교회의 고문서고에 소장돼 있으며 이중 14통의 서한들은 모두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원본이며, 나머지 4통의 서한들은 리브와 신부에게 보낸 것으로 사본만이 남아있다.
최양업 신부가 서한을 작성한 시기는 조선으로 귀국하기 전과 귀국 이후로 나뉘는데, 이 서한들 가운데 서한을 작성한 9곳의 장소가 나타나 있다. 그러나 서한지의 명칭이 명확하지 않고 지명도 변했기 때문에 서한을 작성한 장소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논란이 남아있다.
♣ 바로잡습니다
본지 6월 7일자 11면 ‘오늘날 교우들 보아라’ 기사 중 최양업 신부의 서한은 최승룡 신부(서울대교구 고문서고 담당)가 한국으로 가져왔기에 현재 프랑스가 아닌 한국에 있는 것으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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