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카타리나에 관한 이야기는 많은 부분 전설에 의존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카타리나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왕 코스타의 외동딸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림 속의 카타리나가 늘 아름다운 귀족 여인으로 그려진 이유는 공주라는 출신 때문이었다.
그녀의 기지와 신앙은 당시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박해한 것으로 악명 높았던 로마제국의 황제 막센티우스(재위 306-312)와 얽혀있다. 이 황제는 카타리나에게 이교도의 신을 섬기라고 강요했으나 신앙심이 굳고 학식이 높았던 그녀를 설득할 수 없었던 황제는 박사 50명을 불러서 그녀가 우상을 숭배하게 만들면 포상을 내리겠노라고 약속했다.
졸지에 어린 소녀 1명과 50명의 당대 최고의 지성이 무릎을 맞대고 토론을 벌이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그러나 박사들은 카타리나를 설득하기는커녕 성령의 도우심을 받은 그녀에 의해 오히려 그리스도교인으로 개종하게 되었고, 화가 난 황제는 토론에 참석했던 박사들을 모두 화형에 처해버렸다.
막센티우스는 그 후에도 카타리나에게 주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면 왕비로 맞을 것이라며 회유했으나 카타리나는 “생각만으로도 죄가 될 그런 얘기는 하지 마시오, 나는 그리스도의 신부요”라며 단호히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자 황제는 그녀의 옷을 벗겨서 감옥에 투옥시킨 후 음식을 주지 말 것을 명했다. 이 때 황후가 감옥에 왔다가 카타리나를 만나 개종했으며, 황후와 더불어 200명이 함께 개종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전설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그녀가 갇혀있는 감옥에 비둘기를 보내서 음식을 날라주게 했다고 한다. 북어처럼 비쩍 말라있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카타리나가 살이 포동포동 쪄 있는 것에 놀란 황제는 간수를 심문한 결과, 그녀가 비둘기가 날라다 주는 음식을 먹고 지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신하 한 사람이 황제에게 그녀를 뾰족한 못이 박힌 바퀴에 치어서 살점이 떨어져 나가 죽게 하자는 잔인한 제안을 했다. 못이 박힌 바퀴가 성녀 카타리나의 표징이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성녀는 백성들에게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 바퀴가 부서져 나가는 기적을 일으켜 달라고 간곡히 기도하였고, 과연 기도가 이루어져 하늘에서 불꽃이 내려와 고문 바퀴를 산산 조각냈으며, 공주는 털끝하나 다치지 않았다고 한다.
못이 박힌 바퀴로도 그녀를 죽일 수 없자 황제는 그녀를 참수토록 명령했는데 그녀의 잘려진 목에서는 피 대신 새하얀 우유가 나왔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이후 천사들이 그녀의 시신을 시나이 산으로 옮겨와 장례를 치러주었으며 6세기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시나이 산에 그 유명한 성녀 카타리나 수녀원을 세운 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크라나흐의 이 작품은 아름다운 귀족 여인으로 묘사된 성녀 카타리나가 순교 직전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기도를 드리고 있고, 뒤에는 로마 병정이 긴 칼을 들어 그녀의 목을 치려는 순간을 그리고 있다. 화면 오른쪽에는 못이 박힌 바퀴가 하늘에서 내려온 불기둥에 의해 산산조각 나고 있다.
사실 바퀴가 부서진 것과 성녀가 참수 당한 것은 서로 다른 시간대에 일어난 일이지만 화가는 한 화면에 담고 있다. 기적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은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 있으나 정작 죽음을 앞에 둔 카타리나는 고요하기만 하다.
이 그림을 그린 루카스 크라나흐(1472-1553)는 마르틴 루터의 전속화가였다. 일반적으로 개신교는 성화를 배척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개신교의 설립자인 루터는 전속 화가를 곁에 두고 그림을 전교의 도구로 사용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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