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은 이 세계를 인간이 직접 컨트롤하고, 조작하고,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저런 다양한 시도들을 한다. 주체적으로 무엇을 하는 이런 모습은 멋있게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시도들에 매혹당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우리는 저 형성하는 신적 신비를 우리를 통해 비추어내야 하는 것임을 잊게 된다. 결국 우리는 신적 원천에 의해서 에너지를 부여 받지 못하고, 점점 더 심하게 고갈된다. 오만 형태에 사로잡혀 있으면 신적 원천으로부터 에너지를 받을 수 없다.
물론 신적 원천이 아닌 나 자신의 정신적·육신적 노력으로 무엇을 하려는 오만 형태는 일정 기간 만족감을 줄 수도 있다. 거짓 성취를 진정한 성취로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거짓 만족감은 얼마 가지 않는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지쳐있고, 소진되어 있다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우리는 참으로 행복하다. 사회에는 지친 이들이 많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자살을 하기도 한다. 참으로 불쌍한 이들이다. 물론 우리도 때로는 지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우리는 매주일 혹은 매일 짧은 시간이나마 늘 하느님을 만나면서 스스로를 재발견하고, 세상을 재발견하면서 살아간다. 이럴 경우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도 살아갈 길이 열린다.
정신적·육신적으로 바쁘게 밀려드는 세상 일에 사로잡힐 경우, 영적(마음)인 차원에서 존재하려는 노력을 멈추게 된다. 우리는 환경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늘 인간의 핵심형태인 마음(영)을 갖고 형성하는 신적 신비께 다가가고 들어가고 비추어내야 한다. 그래야 정확한 판단이 가능해진다.
필요없는 만남은 피해야 한다. 돈, 명예, 권력, 세속적 만족감 등을 쫓아다니다 보면 지치게 된다. 마음의 병, 몸의 병이 모두 이래서 온다.
판단하고 정확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판단은 형성하는 신적 신비의 뜻대로 판단내리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오로지 인간의 영(마음)이 성령을 느낄 때 은총의 도움을 통해서만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비추어낼 수 있다. 은총의 도움을 통해서만 사랑이 다른 사람들을 위한 돌봄 속에서 빛을 발하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형성하는 신적신비께서 주시는 ‘은총의 도움’은 중요한 말이다. 잊어선 안 된다. 은총 없이 무엇을 하려해선 안 된다. 혹시 지금 내가 열정적으로 하고 있는 일 혹은 계획하는 일이 은총의 도움 속에서 이뤄지고 있는지, 혹은 나 자신의 욕심으로 이뤄지는지 판단해야 한다. 나 자신의 성취욕을 위한 것인지 하느님의 일인지 판단해야 한다. 우리가 우선적으로 노력해야 할 일은 하느님이 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은총의 도움에서 점점 더 멀어지게 된다. 오만 형태의 기만적 약속들에 속지 말아야 한다. ‘혼자서 이것을 할 수 있어’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단호히 물리쳐야 한다. 우리 삶에 있어서 가장 먼저 요청되는 전환점이 바로 이것이다. 오만 형태에 바탕한 삶의 계획들을 당장 수정해야 한다.
은총 속에서, 인생의 매 단계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점검해야 한다. 우리가 걸어가는 방향을 점검하고, 내가 지금 매일 살아가는 방향이 올바른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지난 과거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 없다. 아무리 과거가 잘못되었고, 또 지금 삶의 계획이 엉망이라고 해도,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성령은 과거 우리들의 잘못된 실패, 계획, 판단 등 모든 것들을 다 형성의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으신 분이기 때문이다. 결국 성령께로, 그리스도께로만 돌아오면, 지난 과거의 어떤 오만 형태의 삶도 새롭게 변할 수 있다. 오히려 지난 과거의 실패는 형성의 기회가 된다. 그래서 오히려 더 큰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지칠 줄 모르는 우리의 노력들, 좋은 의향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이끄시는 하느님의 은총에 의지하지 않는 한, 영성의 진보는 불가능하다. 오로지 은총만이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사랑을 비추어내고, 이 사랑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돌봄으로 흘러들 수 있도록 해줄 수 있을 따름이다. 신비롭게 초형성된 것으로서의 우리의 사랑만이 인류를 위한 공명(조화)적인 전개를 비추어낼 수 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삶을 설계하고 하느님의 은총에 맞추어서 삶을 전개해 나아가는 전환이 이루어 질 때, 참 평화, 참 행복, 참 기쁨, 참 자유, 참 좋은 것들이 모두 가능해진다.
다음 주 부터는 형성적 영성의 마지막 단계, 은총과 더불어 나아가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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