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시위, 검찰수사를 받던 전직 대통령의 자살, 공권력 남용, 가난한 이들의 인권과 재개발 논리가 부딪힌 용산참사, 민주주의와 독재국가 논란…. 사회 전체가 갈등과 대립으로 혼란에 빠져 있는 가운데, 우리 사회에서 남용되는 공권력과 잘못 인용되는 법치주의를 살펴보고 ‘가톨릭 사회교리’를 토대로 공동선의 참 의미와 가난한 이들의 인권 수호를 위한 과제를 찾아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최기산 주교)는 6월 12일 오후 3시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3층 강당에서 ‘가난한 이들의 인권과 한국의 법치주의 - 공동선과 공권력’ 주제로 2009년 정의평화 세미나를 열었다.
최기산 주교는 세미나 인사말에서 “오늘 세미나를 통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규정이 무시당하지 않고 모든 국민이 참으로 존중받는 사랑과 연대의 사회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같이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이웃에 대한 존중과 공동체 지향의 정신이 살아있고 인간 존엄성이 실현되는 사회를 위해 함께 노력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하태훈 교수(고려대 법대/법학전문대학원)는 ‘법에서 규정하는 공권력의 사명과 현실’ 주제 발제에서 “이명박 정부의 1년은 촛불문화제에 대한 무력진압, 미네르바 구속, 용산철거민 참사 등에서 보듯 서민대중의 생존권 주장과 의사표현을 과도하게 억압했다”며 “국민의 기본권인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이른바 법질서 확립이라는 미명 아래 공권력을 이용해 탄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 교수는 “공권력은 형식적으로는 법적 안정성을 위해 투입되어야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인간의 존엄성 보장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며 “법이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는 수단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하 교수는 이어 ▲사회적 약자인 국민의 목소리를 ‘떼법’으로 인식하고 ▲검찰 권력은 정권 코드에 맞춰 수사하며 ▲시민의 정치적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법률안이 입법되는 등 현 정부는 법치의 본래 의미를 무시한 채 국가권력을 남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목소리를 ‘국론분열’, ‘사회혼란세력’으로 낙인찍어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 확립을 명분으로 눌러버린다면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갈등은 커져갈 것”이라고 밝힌 하 교수는 “법치주의가 법질서 확립을 위한 공권력 투입을 정당화시켜주는 도구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임을 알아야 한다”고 전했다.
‘가톨릭 사회교리에서 말하는 공동선’을 주제로 발표한 오경환 신부(인천가톨릭대 명예교수)는 “집단의 이익과 개인들의 이익을 올바로 조정하는 일이야말로 공권력이 맡은 가장 힘든 일”이라며 “민주주의 국가의 공권력의 책임자들은 다수의 노선을 따르면서 소수의 이익을 희생하지 않는 공동선을 건설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간추린 사회교리’ 388항과 389항을 인용한 오 신부는 “공동선의 아주 중요한 부분은 인권의 보장”이라며 “공권력은 국민들의 권리가 보장되는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공동선을 건설하는 것이며 공동선 건설을 위해 공권력은 인간의 권리를 보호하고 증진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전했다.
오 신부는 아울러 417~420항을 인용, “사회교리는 시민사회가 국가보다 우선하기 때문에 국가는 시민사회에 봉사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며 “그렇게 할 때에 국가가 (사회교리의) 보조성의 원리를 준수하는 것이고 민주주의 사회가 확립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 신부는 “우리나라가 한 번도 가톨릭 사회교리의 사상과 원리에 부합하는 사회는 아니었다”며 “사회적 다원화가 더욱 진행되면서 우리나라의 현실과 가톨릭 사회교리에서 말하는 공동선과의 괴리가 지속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세 번째 발제에 나선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장 이강서 신부는 ‘가난한 이들의 인권과 공권력’ 주제 발표에서, 용산참사는 국가의 주택?재개발 정책이 얼마나 왜곡돼 있는지, 국민의 생명?재산을 보호할 공권력이 상식과 윤리적 기준을 상실했을 때 어떻게까지 폭력의 수위가 올라갈 수 있는지 보여준 교훈이라고 밝혔다.
이 신부는 “용산에서는 국민이 위임해 준 공권력을 가장 힘없는 사람에게, 무자비한 방법으로 국가의 이름으로 진압했다”며 “용산참사 건은 단순한 공권력 남용이 아니라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임의로 행사한 결과 국민의 위임을 배신한 국가 폭력”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사회교리의 토대이자 뿌리인 인간 존엄성에 대해 설명한 이 신부는 “가난한 사람들이 적절하게 개선된 처우를 받을 때 비로소 공동선이 실현된다”며 “그 사회의 가장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느냐가 그 사회가 인간 존엄성을 어떻게 실현하느냐의 척도”라고 말했다.
이 신부는 “우리 신념 속에 하느님은 나에게 재화를 많이 보장해주는 해결사로 자리잡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며 “가난한 사람들을 망루로 몰아넣는 재개발이 아닌 가난한 사람도 삶의 질이 더 높아지고 다수가 이익을 얻는 합리적인 주택 정책이 하루 빨리 이 땅에 정착되기를 바란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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