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효익 신부(송전본당 주임)가 사제의 해를 앞두고 최근 사제직의 모든 것을 담은 「사제가 된다는 것」(수원가톨릭대 출판부)을 펴냈다. 수원가톨릭대 영성신학 교수이기도한 방 신부는 책 속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쁜 사제란 없다. 다만 문제의 사제 지망생과 어설픈 양성자만 있을 뿐이다.” 방 신부는 또 “십자가를 거부하면서 영광을 누리려 한다면 자신을 물론 그리스도와 교회를 기만하는 일”이라고 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바보의 길로 들어선 사제. 과연 ‘사제가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 보석 같은 묵상들을 단편적으로나마 요약, 정리해 본다.
# 사제가 되려면 옛 생활을 청산하여 낡은 인간을 벗어버리고 새 인간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이제껏 살아왔던 생활에서 벗어나 하느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천지창조 이전부터 미리 마련하여 감추어 두셨던 지혜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 성숙한 신앙생활로 꾸준하게 옮겨갈 수 있어야 한다. 지속적인 노력과 회개의 과정을 통하여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는 지속적인 신앙 교육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리스도와 고난을 같이 나누고, 그리스도와 같이 죽어야 하는 긴 여정을 가야한다.
이 여정은 성령의 격려를 받아서 끊임없는 기도와 사랑을 실천하면서 복음적 완덕이라는 거룩한 목표를 향해 쉴 수 없는 달음질이며,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행복한 여정이다.
# 사제의 길은 또한 십자가의 길이다. 십자가의 길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면서 부활의 영광을 미리 맛보는 길이다. 부활을 체험하기 원한다면 예수님처럼 남을 위해 죽어야 한다. 십자가의 길은 어리석게 보일 테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는 죽는 것이 부활의 영광과 더불어 하느님의 힘을 얻는 것임을 잘 알기 때문에 용기를 가지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
그래서 이 길은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길이다.
# 일반적으로 교구사제의 영성생활은 활동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에 젖어있다. 위기감은 활동 중심적 사제생활에서 시작된다. 활동에 관심을 많이 기울이고 있는 교구 사제들이 진정하고 온전한 활동가가 되려면 반드시 관상적이어야 한다. 물론 온전한 관상가가 되기를 원한다면 묵상을 잘할 수 있어야 하며 부분적으로나마 활동적이어야 한다.
우리는 마리아처럼 기도 안에서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부르심을 받는 때가 있는가 하면 마르타처럼 이웃을 섬기기 위해 수많은 일로 바쁘게 움직이라고 부르심을 받을 때도 있다. 우리는 양쪽 모두를 포기할 수 없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는 사랑에서 비롯되는 활동을 하는 사제, 즉 관상적인 사제를 더 요구하고 있다.
묵상이 사색적 이성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관상은 직관적 지성과 사랑에 젖은 의지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관상은 하느님의 초자연적인 선물로서 그 본질적 특성은 하느님께 대한 체험적 지식이며 하느님을 직관적으로 인식하고 사랑하는 행위이다.
관상은 자기 존재의 중심에서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는 깨달음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선물인 관상기도에 이르려면 우선 말씀을 읽고, 묵상을 잘 할 수 있어야 한다. 먼저 말씀을 읽지 않으면 묵상할 수 없고 먼저 묵상하지 않고서는 관상기도를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의 높은 단계에 오를수록 영적 지도자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 오늘날 권위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권위의 실추는 다양한 배경을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하겠지만 문제는 권위를 행사하는 사제가 신자들에게 군림하려거나 세도를 부리기 때문이며,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살아야 하는 사제가 어느새 임금이 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사제로서의 정체성 상실이 결국 권위의 상실로 이어지고 독선적으로 되고 권위주의에 매달리게 만드는 것이다.
한편 권위가 많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권위가 없어서 문제다. 권위가 없으니까, 아니 권위가 실추되었기 때문에 실추된 권위를 회복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으면서 없는 권위를 행사하려고 하니까 권위의식에 사로잡힌 나머지 아예 권위주의에 빠지게 된다.
권위주의에 빠지면 권력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앞서고 이렇게 되면 자주 분노를 표출하고 호통이 앞서게 될 것이다. 또한 사제가 유교적인 토대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수직적인 윤리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리고 엄부에 대한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스스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체험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요 신자들에게도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을 선포하기 어렵다.
사제의 삶은 소박하고 정갈해야 하며,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일상의 삶에서 좋은 습관을 가지고 살면서 착한 목자처럼 섬김과 봉사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때, 객관적이며 거룩한 권위는 널리 퍼져나갈 것이며 사제의 인간적이며 주관적인 권위는 높아질 것이다.
※ 책구입문의 : 031-290-8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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