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는 오늘도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한다. 불구덩이를 매달고 공중을 향해 치솟고 내달리는 건 우리의 숙명이다.”(「리턴 투 베이스」중)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29묘역에는 하늘을 사랑했던 두 부자가 나란히 안장돼 있다. 고 박명렬(공사 26기) 소령과 그의 외아들 고 박인철(마르티노·공사 52기) 대위가 그들이다.
아버지 박 소령은 공군 F-4E 전투기 조종사로 1984년 한미연합군사훈련인 ‘팀스피릿’ 중 저고도 사격훈련을 하다 불의의 사고로 순직했다.
아버지 순직 당시 박 대위는 다섯 살 꼬마였다. 그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어머니와 함께 살겠다는 소박한 꿈을 꿨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아버지의 사진과 국립서울현충원 유물전시관에 전시된 아버지 유품을 접하며 ‘빨간 마후라’에 대한 동경이 강렬해졌다. 결국 그는 2000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가족들의 반대가 거셌지만 박 대위는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자신이 원하던, 그리고 아버지가 걸었던 조종사의 길을 걷게 됐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2007년 7월 20일 박 대위 역시 KF-16 전투기를 타고 서해안 상공에서 요격훈련 중 목숨을 잃었다. 현충일에 아버지 묘비 앞에서 아버지가 못 다 이룬 창공의 꿈을 이루겠다는 다짐을 한지 50여 일만의 사고였기에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박 대위의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 대신 국립서울현충원의 아버지 묘 옆에 나란히 안장됐다. 국립서울현충원에는 더 이상 안장할 자리가 없었지만 유가족의 간곡한 요청으로 가능했다.
최근 이들 부자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다큐소설 「리턴 투 베이스(Return to Base)」(차인숙 지음/도서출판 화남/246쪽/1만원)가 출간됐다.
아들 박 대위의 순직 소식을 언론보도를 통해 접한 소설가 차인숙(54)씨에게 남편과 아들을 모두 하늘로 떠나보낸 이준신(첼레스틴·54)씨의 애절한 마음이 전해져 소설 집필을 결심하고 1년여 만에 소설을 완성했다.
“박 대위와 동갑내기 아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의 입장에서 유가족의 슬픔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차씨는 소설을 통해 남편과 아들을 잃은 이씨의 마음과 아버지에 대한 애증이 빨간 마후라에 대한 동경으로 바뀌는 박 대위의 고민 등을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조종사들이 임무를 마치고 기지로 귀환할 때 사용하는 비행용어를 나타내는 ‘리턴 투 베이스’는 박명렬 소령의 모습을 통해 공군 조종사들의 충성심과 조종사 양성과정, 공군사관생도 생활 등에 대해서도 잘 그려내고 있다.
현충일을 하루 앞둔 6월 5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는 유가족과 차인숙 작가, 두 부자의 동기생 등 4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부자 조종사를 추모하기 위해 출간된 소설을 헌정하는 행사가 열렸다.
소설을 두 부자에게 가장 먼저 전달하고 싶다는 작가의 제안으로 마련된 것.
아버지 박 소령의 동기생 박성보(레미지오·국방대학교 연구교수) 대령은 “아버지와는 의형제였고, 아들에게는 후견인으로서 두 사람과 함께했다”며 “요즘 젊은이들의 눈에는 아버지가 순직한 길을 따라간 아들의 모습이 의아할 지도 모르겠지만 이는 엄연히 빨간 마후라의 기질”이라고 설명했다.
차 작가와 출판사 화남은 유가족과 협의해 소설 판매 수익금의 일부를 모아 ‘아름다운 재단’과 함께 ‘고 박명렬·고 박인철 의인기금’(가칭)을 조성해 순직 군 자녀들에게 장학금으로 전달할 계획이다. 또한 이번 소설을 영화로 제작해 올 10월 국군의 날을 즈음해 개봉 예정이다.
박 소령의 아내이자 박 대위의 어머니인 이준신씨는 “두 부자가 하늘을 좋아하고 그 곳에서 살다가 이제 그곳에 머물게 됐다”며 “몸은 우리와 함께하지 않지만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이름이라도 오래오래 기억될 수 있게 돼 감사하고 기쁘다”고 말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