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며칠전 서울 정능동 성당에서 대림절 특별 강론을 마치고 나의 초등학교 4학년 담임이셨던 허영회 선생님을 30여 년만에 만나 뵈었다. 이날 나에게 해주신 허선생님의 체험담을 들어보자.
1962년 3월 5일 교육대학을 갓 졸업한 허선생님은 강원도 홍천군 내면 광원초등학교에 부임하였다. 험하고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한 여름에도 물에 들어가기 어려운 이 곳의 사람들은 주로 화전민이었다.
부임한지 삼일째 되는 날 교장실에 불려간 허선생님은 황당무계한 일을 겪었다. 3명의 학부모들이 교장선생님에게 항의하기를, 「이 사람이 당신이 데려온 새 선생이요. 지난 번 선생은 하루에 수업을 4시간만 했는데 어째서 이 새파란 선생은 6시간을 하나요? 우리 애들이 일찍 집으로 돌아와야 농사일을 시킬 수 있잖소」
험악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허선생님은 나라의 법도를 어길 수 없다면서 학부모들을 간곡하게 설득하여 돌려보냈다. 같은해 12월 1일 새벽 허선생님은 새로이 개교하는 홍천읍의 석화초등학교로 전근하기 위하여 하숙집 문을 나섰다. 집앞에는 하얗게 흰 옷을 입은 온 동네사람들과 전교생이 모여있었다. 두 학기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6시간의 수업을 엄격히 해주신 것에 감사하는 순박한 마음들이 모인 것이다.
지금도 허선생님에게 가슴이 아픈 일은 점심 도시락을 준비 못해서 굶는 어린이들과 아니면 구운 옥수수나 도토리 밥을 먹는 학생들이 멀어져 가는 버스 뒤를 수 백미터나 뜀박질로 자신을 배웅하던 장면이다. 이 말씀을 내게 해 주시는 허선생님의 눈시울에 이슬이 맺혔다. 그 순간 나는 선생님의 눈물 속에서 진리와 사랑의 빛을 보았다.
지금 우리는 그야말로 눈감으면 코 베어 가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몇 일 전에는 3억 원 정도의 빚이 있는 슈퍼의 주인이 술에 취해 자다가 두 발목을 절단 당했고, 지난 9월에는 1, 500만 원의 보험금을 노린 아버지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의 손가락을 자르고 강도극을 꾸몄으며, 지난달에는 경남 진주의 한 초등학생이 『선생님들! 왜 생사람 잡으세요』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였다.
『어둠 속을 헤매는 백성』인 우리에게 정말 큰 빛이 간절히 필요하다. 거짓과 탐욕과 불의와 미움이 판을 치는 어둠 속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그 빛이 이미 오셨지만 그 빛을 알아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게 슬픈 현실이다. 또 다른 이야기를 들어보자.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영국의 와링턴 근처의 한 성당은 예수성탄전야 미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적군의 공습 때문에 밤에는 소등을 해야 했으므로 어둠 속에서 미사를 드려야 했다. 이날 성당의 앞자리는 특별히 독일군과 이태리군의 포로신자들이 미사에 참석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성당의 유일한 오르간 연주자가 몸이 아파서 음악이 없는 미사가 될 지경이 되고 말았다. 미사 주례자 로치훠드 신부님께서 이 소식을 알리자 한 독일군 포로가 반주를 자원하였고 로치훠드 신부님은 이것을 허락하셨다.
그 독일군 포로가 조용히 그리고 거룩하게 성탄 성가를 연주하자 성당 안은 감격과 기쁨의 눈물로 가득하게 되었다. 이날밤 성당 안의 신자들은 어둠 속에서 주님의 거룩한 진리와 사랑의 큰 빛을 보았다. 비록 길가와 창가는 소등으로 어두웠지만 와링턴 마을에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성탄의 빛이 커졌다.
이 세상이 아무리 어둡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마음을 가다듬고 주님께로 향하면 누구든지 결코 꺼지지 않는 진리와 사랑의 빛을 볼 수 있다. 수많은 허영회 선생님이 우리 곁에 계시며: 수많은 독일군 포로가 우리에게 감동의 빛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그리고 우리도 두려움을 버리고 진리와 사랑의 빛이신 예수 아기께로 달려가서 경배드리자!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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