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이었다. 동물적 직감인가 아니면 노 시인의 축적된 시대 읽기의 산물인가 「고통스러운 시국」이 예감으로 다가왔다. 곧이어 곤두박질치는 경제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이웃의 고통이 현실로 다가왔고, 그 현실과 유리될 수 없는 것이 문학이기에 시인은 고통의 틈새에서 희망을 찾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희망학습」 「지뢰밭」 「내일 아침」 등.
한국 시단의 원로 김남조(마리아 막달레나) 시인의 열 네번 째 시집은 이렇게 엮어졌다. 물론 이미 발표된 기존 작품들도 조금씩의 퇴고를 거쳐 함께 묶었다. 모두 50편.
『총탄이 몸에 명중했다 / 살을 꿰뚫는 얼음번개의 얼얼한 상처, / 한데 죽지 않았다 // 머리에 총 맞지 않았으니 / 아직 살아있고 / 생각하는 일 가능하리라 / 가슴에도 총 맞지 않았으니 / 아직 살아 있고 / 사랑하는 일 가능하리라 // 이런 까닭으로 / 한국인들 / 다시금 희망의 학습을 시작한다』(「희망학습」)
비록 총은 맞았지만 죽지 않았고, 생각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으니 희망을 갖자는 얘기다. 문화평론가 김재홍 교수는 작품해설을 통해 『희망의 철학이 생생하게 표출돼 있다』고 말하고 『시인에게 있어 생명은 바로 사랑이며, 그러기에 사랑 또한 희망이다』고 표현한다. 단지 여기서의 희망은 관념론적으로 주어진 추상개념이 아니라 절망과 고통을 참고 이겨냄으로써 싹튼 생명력 지닌 희망을 말하고 있다.
『지뢰밭에 들어섰다 / (꼭 그런 느낌이다) / 앞뒤좌우에서 지뢰가 터진다 / (꼭 그런 참상이다) // … // … // 그러면서 지금 / 겨울햇빛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 사람의 감수성이 / 야릇하게 조금 기쁘다』(「지뢰밭」)
현실이, 하루하루의 삶이 「지뢰밭의 초입」에 들어선 느낌이라는 시인은 특히 「경제」라는 「지뢰」에 시선을 빼앗긴 한국인의 현실에 동화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의 따뜻한 감수성이 이 지뢰밭을 벗어나게 할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띄우고 있다.
굳이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제목이 아니어도 그의 시 전반에는 성숙한 신앙인의 신심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 신앙시라 따로 칭하지 않아도 인간사를 통해 신앙을 고백하고 그 신앙을 살아가는 시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사랑의 시학, 고독의 시학, 섭리의 시학, 생명의 시학, 희망의 시학으로 일컬어지는 시인의 시 세계는 결국 절대자를 향한 믿음의 고백으로 보인다.
「가톨릭신문」 일흔 돌에 축시로 쓴 「신문에게」도 들어 있어 본보 독자에게는 반가움이 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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