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정화의식
진오귀굿은 주당물림 이후 즉시 12거리의 첫거리인 부정거리로 이어진다. 굿장은 이미 준비과정에서 철저하게 부정(不淨)을 가려 일상적인 현실의 연장이 차단된 그 공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거리를 하여 더욱 정화시키기 위해 물을 그 굿판 주위에 뿌리고 소지(燒紙)에 불을 붙여 굿판에서 태워버린다. 불로 세상을 태워서 없애버리는 소각의 의미가 있고, 물의 홍수로 세상을 휩쓸어 없애버리는 의미를 지니는 것이기에 물과 불로 굿장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태워 없애고 파괴시켜 떠내려 보내 없애버려서 그 안에 남아 있는 현실 일체의 것을 없애버리는 것으로 풀이된다. 굿장에 반드시 촛불을 켜고 정화수(井華水)를 바치며 물과 동계의 액체로 역시 홍수의 상징물로 볼 수 있는 술을 부어놓는 것도 모두 굿장 안에 있는 일상적인 현실(세속)을 소거(消去) 정화(淨化)시키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굿이 펼쳐질 굿장을 정화하는 이유는 그곳이 신성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여러 신을 맞이하였다가 보내는 강신장(降神場)으로서 부정이 없는 장소인 것이다.
교중 미사에서 성수를 뿌리는 행위도 정화의 의미를 포함한다. 그리스도교적으로 알아듣는 물의 상징성은 일단 하느님의 창조적 정신을 간직한 모든 생명의 모체로서 이해된다. 물은 생명의 창조와 보존의 상징인 것이다. 물은 또한 하느님의 구원행위의 도구가 된 구세사의 사적(史蹟)과 직결된다.
그래서 물은 파멸과 죽음의 요소이자 그 상징으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로는 구원의 상징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물의 또 다른 특성은 세척이다. 그래서 물은 정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미 많은 종교들에서 행하는 정화예식은 물론이고 그리스도교에서의 세례식도 이런 의미를 간과하지 않는다. 아울러 정화의식으로서 물을 사용하여 씻는 상징행위로서 두드러지는 경우로는 성체성혈로 변화될 제단 위의 빵과 포도주에 분향한 후 청정수로 손을 씻는 행위를 들 수 있다.
③ 신과의 조우(遭遇)과정과 방법
진오귀굿의 첫 부분은 준비과장이고 끝부분은 종결과장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본(本)과장으로서 거리과장이 있다. 준비과장의 제차(祭次)가 부정한 것과 잡혼잡신(雜婚雜神)을 물리치고 제의(祭儀)장소를 정화하며 모든 신령과 조상을 청하여 모시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고 보통 뒷전으로 불리는 종결과장은 잡귀잡신을 놀려드리는 제차로서 여러 다른 잡귀잡신의 무리를 각기 모시는 작은 거리들로 구성되어 있다.
즉 굿의 중심부분인 본과장에서 성격을 달리하면서도 한국 무(巫)의 대표적인 정신(正神)들인 신령들을 각기 그 해당거리에 모시는 거리와 그 앞부분인 준비과장에서 모셔진 조상들로 인해서 끼어들 틈이 없었던 잡귀잡신마저도 뒷전에서만은 그 성격에 따라 모셔지고 춤과 노래, 재담과 음악, 그리고 술과 음식으로 대접받아 되돌려 보내지게 되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데 이 때 본과장에서의 거리과장과 뒷전에서의 작은 거리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각거리마다 신령(神靈)들과의 조우(遭遇)과정을 형식화하면 청신(請神ㆍ신모심) → 대접(待接) 기원(祈願)ㆍ혹은 오신(娛神ㆍ신놀림) → 송신(送神ㆍ신보냄)이라는 3단적 구성양식이 된다.
무당이 신과 조우하려는 것은 무당에게 진오귀굿을 부탁한 단골이 안고 있는 문제 즉 인간 존재의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서 단골과 신령과의 사이에 다리를 놓아줌으로써 그 셋이 하나 되어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문제해결이 되도록 하려는 의도에서인데 바로 그 조화를 위하여 신의 도움을 청할 때 무당은 춤을 춘다. 그것도 격렬한 도무(跳無)가 중심을 이룬다.
그 춤은 신을 내리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어떤 신이든 무에서는 춤으로 오고 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춤은 신들이 좋아하는 동작이다. 산신이나 조상신 모두가 춤과 노래로 즐겁게 노는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무당은 춤과 노래로 신들을 즐겁게 해드리는 것이다. 굿에서 신을 즐겁게 해드리면 즐거움을 받은 신이 마음이 동해서 자신들을 도와줄 것이라는 신앙적 기대 때문이다. 즉 단순히 감사하는 마음에서 굿을 하는 것이 아니고, 즐겁게 하여 주었으니 은혜를 갚을 것이라는 상호 관계적 기대에 기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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