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님은 재작년 어린이날 작고 하셨다. 5월4일 밤 아버님께 폐렴 증세가 있다는 형님의 연락을 받은 나는 심상치 않은 예감도 있고 해서 일주일간 갈아입을 옷을 챙겨서 인천으로 달려갔다. 임종을 예감하신 아버님께서는 자꾸만 눈물을 보이셨다. 어머님의 묵주기도와 선종을 위한 기도가 계속되는 동안 어린이날을 밖에서 지내지 못하게 된 조카들도 할아버지 곁에서 그분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 보았다.
아버님은 숨이 가쁘셔서 그런지 별 말씀은 없으셨고 단지 우리 가족 모두에게 눈길을 보내시느라고 바쁘신 듯 했다. 아버님을 떠나보내야 하는 어머님과 우리 형제들은 이별의 슬픔으로 경황이 없는 듯 했지만 나로서는 아버님의 영혼을 돌보고 장례 절차 등을 염려하는 마음 때문에 눈물이 나올 겨를이 없었다. 사제로서 가끔 임종하는 분들을 지켜본 적은 있었으나 아버님의 임종순간은 나에게 생경한 느낌과 특별한 의미를 제공해주었다.
나는 아버님께서 당신의 마지막 날에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가에 대해 예민하게 관심을 기울였다. 그분은 편히 쉬시거나 맛있는 음식을 마지막으로 드시거나, 당신 묘지의 비석을 어떻게 세우면 좋을지 등에는 관심이 없으셨다. 아버님의 관심사는 한순간이라도 당신의 가족들을 좀 더 만나고 바라보는 일이었다. 즉 마지막 남은 정을 우리와 함께 조금이라도 더 나누고 싶어하셨다. 그래서 평소에는 주로 주무시던 분이 이 날만은 아침부터 오후 3시경 숨을 거두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절대로 눈을 감지 않으려 하셨다. 아버님의 이러한 모습은 나에게 그분의 마지막 유언으로 들려왔다.
다시 말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어떻게 하면 좀 더 편할까, 무엇이 나의 명예나 위신을 높여줄 수 있을까 등등의 관심은 적어도 아버님의 유언은 아니었다. 아버님께서 몸과 마음으로 나에게 남긴 무언의 유언은 가족들 모두가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이었다. 즉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잠을 자는 일도 아니고, 먹는 일도 아니고, 명예나 체면도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일이라는 유언을 우리 가족들에게 남기신 것이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에게 일종의 유언을 남기신다. 유언은 마지막으로 남기는 가장 중요한 말씀을 담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오늘의 유언 말씀은 여러 모로 중요하며 자주 묵상해야 할 구절이다.
우선 예수님의 관심은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해보자. 예수님의 관심은 전 인류의 복음화를 통한 구원에 있다. 그것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며 예수님은 이 뜻을 이루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아버지의 뜻이 당신의 제자들을 통해 계속 이뤄져야 함을 당부하신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거처도 없이 떠돌아다니시며 제자들과 함께 동고동락하신 것, 많은 사람들의 비난과 모욕과 박해의 고초를 감내하신 것, 몸소 부활하시고 성령을 약속하신 것 등 모두가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다. 그것은 온 인류가 아버지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복음화 사업이다.
이제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가서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 그리하여 그들이 나의 제자가 되어 그들 또한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여라. 너희가 복음을 전하는 그곳에 나도 함께 있겠다』
예수님의 유언은 우리가 언제나 어디서나 마음에 새기고, 그 어떤 일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은 단지 성직자나 수도자들만의 몫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모두의 가장 중요한 보편적 사명이다.
나의 아버님이 임종하시느라 그 바쁜 와중에서도 우리 가족 모두에게 가장 강렬하고 소중한 유언을 남겨주신 것처럼, 예수님도 당신의 제자들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가장 시급한 말씀을 하신다. 『가서 무조건 복음을 전하여라. 나도 너희와 함께 하겠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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