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전 1월. 매서운 추위속에 명동성당에서는 김수환 추기경의 집전하에 장엄한 장례미사가 봉헌됐다. 그 자리는 그저 황인철 변호사라는 한 자연인의 이승에서의 삶을 마감하는 행사에 그치지 않고 그가 행한 하느님의 일에 대한 기억이 거기 모인 모두를 숙연케 하고 감동시킨 자리였다.
「무죄다라는 말 한마디/어둠속에 반짝였고/그리로 겨우 숨을 쉬었다/차가운 하늘을 날아가는 겨울오리들/틈에서 그대를 본다/춥겠다/그대의 깃은 아직 세상을 따뜻하게 하고 있는데」시인 정현종은 황인철의 영전에 「무죄다라는 말 한마디」라는 조시를 바쳤다. 그가 묻힌 용인의 천주교 묘지는 산이 높고 그가 돌아간 1월20일 세바스찬 축일은 매년 어김없이 눈보라가 몰아쳐 그의 일을 기리러 모이는 이들의 발걸음을 종종거리게 한다. 하지만 그의 일을 기리는 것은 산자들의 의무이기도 하다.
황인철 변호사는 1970년과 80년대 군사정권의 독재와 인권유린에 법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대항한 율사였을 뿐 아니라 열심한 신앙인으로서 김수환 추기경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우리 출판계에서 「창작과 비평」과 아울러 우리 지성사를 이끌어 온 「문학과 지성」을 창간하고 제자리 잡게 하는데 큰 공헌을 하기도 하였다. 그가 떠난 지 5년. 그가 대표간사로 몸담았던 인권변호사들의 모임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그리고 「문학과 지성사」천주교인권위원회가 힘을 모아 그의 삶을 다룬 평전을 펴냈다. 어떤 개인을 신화화하는 자리로서가 아니라 그가 행했던 아름다운 일을 기억하고 이를 이어받는 계기로서 인물평전을 펴내는 일에 그간 우리 사회는 너무 무관심해 왔다.
황인철 변호사의 일생을 되짚어 보는 것은 민주화를 위해 싸워온 우리 근대사를 공부하는 일인 동시에 우리 교회의 인권운동을 살펴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의 가족과 친구, 후배 변호사들이 나누어 집필한 이 평전은 특히 자라나는 젊은 세대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줄 만하다. 그의 장례미사때 가족도 친지도 모르게 그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많은 이들이 찾아와 주위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긴급조치, 이병린, 강신옥ㆍ한승헌, 민청학련, 3ㆍ1구국선언, 김지하, 이영희, 백낙청, 김재규, 부산 미문화원 방화, 임수경ㆍ문규현 방북, 박종철 고문치사 등 그가 관여한 사건은 그대로 한국인권변론의 역사 전부이기도 하다. 그의 선배 이돈명 변호사는 이렇게 평했다.
『사실 황변호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은 그 개인의 것이 아니므로 특별히 따로 모아 추모할 일이 아닐는지도 모릅니다. 그가 믿고 의지하던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살아 있는 동안 그분의 입이 되고 몸이 되었던 것이니 그의 말과 행동은 그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그가 미처 다하지 못한 생각과 말과 행동을 마저 바치는 일이야말로 남은 우리의 몫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어진 몫을 다하고 떠나면 우리의 후손들이 다시 우리의 일을 이어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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