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간혹 태풍의 눈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는데 그럴 때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바람직한 태도는 과연 무엇일까요. 그럴 때 부르심을 받은 존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어쩌면 철저한 중심 비우기를 통해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지혜를 터득해 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지난해 춘천교구 주보에 연재됐던 「텅 빈 중심」을 단행본「씨앗은 숲의 약속입니다」로 엮은 이희수(모니카)씨. 이 연재 수필은 작가 특유의 감성을 바탕으로, 성직자가 아닌 일반 신자의 눈을 통해 복음을 바라보고 묵상함으로써 오히려 더 신선한 느낌을 주었고, 생활 속의 신앙을 담담하게 그려 가톨릭 신자는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잔잔한 감동을 불러 왔다.
작가는 「텅 빈 중심」이 어쩌면 「하느님께서 일러주신 삶의 예지에 관한 화답의 노래」라고 말한다. 하느님은 미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이조차도 가끔 도구로 쓰실 때가 있다. 그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하느님의 부르심과 은총이 쏟아질 때 자신을 비움으로써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지혜를 터득하고자 한다.
짤막짤막한 60여편의 글들은 그 주간의 복음 중에서 핵심적인 구절을 앞에 두고 우리 삶과 신앙의 세세한 정경은 물론 고금의 지혜까지를 모두 살펴보면서 다양한 묵상의 소재들을 던져 준다.
다양하지만 화려하지는 않은 체험과 이야기들을 동원해 적은 이 작은 묵상들은 말그대로 「매주 땀흘려 뿌린 씨앗」이다. 그리고 이 씨앗들은 거대한 숲의 전신이다.
『때로 부족한 내게도 씨앗이 되라는 그분 말씀이 들릴 때가 있다. 그럴 땐 내가 다른 이들보다 더 단점이 많고 거칠기에 부르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씨앗 속에서 숲을 바라볼 줄 아는 것은 믿음을 가진 이들이 누리는 특권이다. 씨앗이 숲 속의 약속임을 전신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의 시작이다』
이희수씨는 춘천에서 태어나 현재 강원고등학교에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 수필집 「가슴으로 흐르는 강」(88년), 「아니마의 연가」(92년), 「달빛 흐르는 소리」(96년) 등을 펴냈다. 93년 제1회 수필문학상을 받았다.
<대희/220면/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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