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별로 그럴 일이 없지만, 본당 사목을 할 때에는 가금 단체모임의 여흥시간에 노래를 불러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지나간 유행가 가운데 가사가 제대로 다 기억나는 것을 하나 골라 불렀었는데, 그것이 그 이후 한동안 저의 단골메뉴곡이 되었었습니다. 그 노래제목은 「장미빛 스카프」, 그 가사가 「내가 왜 이럴까?」라는 것으로 시작되는 노래였습니다.
성령강림에 대한 묵상을 시작하며, 「내가 왜 이럴까?」라는 이 말이 화두(話頭)처럼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오늘의 성경말씀을 보면 그 안에, 「내가 왜 이럴까?」라는 자문을 했을만한 사람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 성령강림을 체험한 사도들이 성령으로 가득 차서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여러 가지 외국어로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그런 자신들의 모습에 대해 의아해 했을 것입니다.
또 그 말을 듣는 사람들 역시, 사도들의 말이 자기네 말로 또렷하게 들림에 대해「이게 어찌된 일인가? 내가 왜 이럴까?」라는 생각들을 했었을 것입니다(제1독서).『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서는 아무도「예수는 주님이시다」하고 고백할 수 없습니다』라고 한 바오로 사도 역시 「내가 왜 이럴까?」라는 생각을 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그 신자들을 박해하던 자신이, 이제 그분의 열렬한 추종자로 변화가 된 그 현실을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결코 설명을 할 수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2독서). 그리고 복음말씀에 나오는 제자들의 머릿 속에도 분명 「내가 왜 이럴까?」라는 생각이 있었을 것입니다. 유다인들이 무서워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숨어있던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또 특히 그분께서 보내주신 협조자 성령을 체험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사람들로 변화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유명해져 있더라」라는 말처럼, 어느 순간 문득 「변화된 나의 모습」을 발견하며 기쁨과 희망을 느끼게 되는 것은, 성령을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저는, 어떻게 보면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지만 그래도 제게는 너무나 신기하기만 한, 그래서 「정말 이게 어찌된 일인가? 내가 왜 이럴까?」라는 생각을 절로 하게 하는 한 작은 체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담배에 관한 것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시작하여 근 13년 동안 담배를 피웠습니다. 사람체질에 따라 흡연의 해악 정도는 다르게 나타날 수 있겠지만, 사실 제게 담배는 맞지가 않는 것이었습니다. 피우면 골치가 아팠습니다. 그렇지만 피울 때의 그 기분과 습관 때문에 그것을 끊지 못하고 하루에 한 갑 이상을 족히 피우는 작은 골초였습니다. 그 사이 수없이 금연을 시도했지만 또한 그 숫자만큼 결심은 여러 가지 이유로 쉽게 깨져버리곤 했었습니다. 그러기가 13년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9년 전 어느 날 문득, 「이제는 정말 끊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리고 그날 시도된 금연은 신기하게도 오늘날까지 잘 지속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다른 분이 피우는 담배연기 냄새가 싫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직접 피우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가 않습니다. 「정말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전에 수없이 끊고 다시 피고 할 때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 달라진 것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적어도 이 담배문제에 있어서 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이 「내 의지, 내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변화의 신비」(?)가 신앙적이고 영적인 면에 있어서도 자주 그리고 더 깊이 체험되어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내 의지, 내 힘은 부족하지만 겸손한 마음과 성실한 실천 중에 성령께서는 우리를 영육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소박한 일상(日常) 가운데서 커다란 의미로서 우리에게 다가오시어 우리를 채우시고 변화시키시고 완성시켜 주실 성령께 우리의 마음을 활짝 열어드려야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왜 이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다 사랑이요 감사일 따름입니다」라고 말씀드릴 날이 쉬이 올 것입니다. 오소서 성령이여! 온 누리가 새로워지리이다!
말씀 안에서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