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주님! 항상 연약하고 보잘것없던 제게, 이토록 커다란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가슴이 벅차오르고 너무 뜨거워 성 토마스의 성체 찬미가가 끊임없이 흘러나옵니다. 주님보다는 그냥 사람들이 좋아서 종교 생활을 시작했고, 하느님을 믿기보다는 정말 계실까하는 의심이 더 많았었습니다. 또한 제가 어려울 때 드리던 간절한 기도마저 등 돌려 외면한 당신을 원망하며 다시는 믿지 않으리라 결심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주님, 이렇게 못되고 보잘 것 없는 저를 어찌하여 부르셨습니까? 어찌하여 레지오 단원으로 인도해 주시고 M.E와 꾸르실료를 경험하게 하셨습니까? 당신의 도구로 쓰기엔 너무도 나약하고 미흡할 뿐인데 어찌하여 당신의 포도밭에 저를 일꾼으로 삼으셨습니까?
주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것을 오묘한 섭리로 이끌어 주시고, 미지근한 신앙생활로 열정 없는 삶을 살아가는 저에게 늘 무심하지 않으시다는 징표를 보여주시며 신앙의 신비를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게 또 웬일입니까? 바오로 해’를 맞이하여 사도행전 및 바오로 서간을 필사하면서 문득 문득 생각나는 사람들을 위하여 화살기도와 묵상, 묵주기도만 드렸을 뿐인데 주님께서는 저로 하여금 당신의 권능과 기적을 한없이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힘든 사회생활로 찌들었던 일상의 짜증들이 맑은 샘물을 마신듯 말끔히 사라지고 지금도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은총으로 가득 찬 나날이 계속 되었습니다.
오해와 의견차이로 다투던 사람이 악수를 청해오고, 건강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빠른 회복을 보이며, 심지어 제 어머님께서는 온몸이 쑤시고 머리도 아프고 움직이지 못할 정도의 고통으로 병원을 찾아가 진찰한 결과, 극히 짧은 순간의 중풍이 왔다가 금새 사라져 버린 기적 같은 일이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씀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께서는 제게 올바른 선교의 길을 알려주셨고 지혜로운 진리로 새 생명의 말씀을 자신 있게 전할 수 있도록 용기와 희망을 심어 주시며 그동안 닫혀있던 제 입술을 열어주셨습니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나,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 하지마라. 내가 너의 하느님이니 겁내지 마라. 너의 힘을 북돋우고 너를 도와주리라.(이사41.10)’ 하신 말씀을 무기삼아 주님과 성모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린 다음 바오로 서간을 필사하면서 눈에 비친 몇 몇 사람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 분들을 만나러 가는 그 길은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로마 10.15)’하는 말씀처럼 아무런 걱정도 두려움도 없이 오히려 발걸음도 가볍고 흥에 겨워서 성가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처럼 열정을 가지고 복음 말씀을 자신 있게 전할 수 있었고 주변 사람들도 서서히 마음을 열고 천주교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세례 후 한 번도 성당에 다니지 않았던 교우도 찾아가 함께 기도하고 잠시 동안 신앙에 관한 대화만을 나누었을 뿐인데 너무나 감사하다며 바로 그 다음날에는 그의 자녀와 더불어 새벽 미사에 참례하여 영혼에 쌓인 먼지를 고해성사를 통하여 깨끗하게 털어내고 자녀 두 명도 유아세례와 첫 영성체 교리등록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10년 이상 쉬고 계신 형제님 두 분도, 그동안 그렇게 권유해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더니만, 그날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바로 응답 하시며 면도도 말끔하게 하시고 깨끗한 새 옷을 차려입고 성당으로 가서 수녀님과 면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늘 부족했던 제게 바오로 사도처럼 선교의 열정을 심어 주셨고 ‘잃은 양’을 되찾는 기쁨이 어떤 것인지도 맛보게 하셨습니다. 곰곰 생각해 보니 이것이 어찌 ‘제 스스로가 했다’ 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능력이 아니고서야 보잘 것 없는 이 죄인의 힘으로 가능이나 한 일이겠습니까? 이미 주님께서는 그 분들의 마음을 활짝 열어 주시고 저를 맞이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오, 끝없는 사랑과 눈부신 빛으로 오신 주님! 제가 가는 길에 늘 함께 해 주시어 제 입술을 열어주시고 당신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주셨음에 진심으로 감사와 찬미와 영광을 드립니다. 부디 겸손되이 청하오니, 이웃을 향한 봉사가 드러나지 않고 인정받는 일이 아닐지라도 기쁜 마음으로 최선을 다 할 수 있도록 믿음의 밝은 눈을 주시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아름다운 세상, 사랑이 꽃피는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도록 항상 성령의 불로 뜨겁게 달구어 주소서. 이제 저는 ‘선교는 주님의 희망’임을 굳게 명심하며 바오로 사도의 삶을 닮으려합니다.
‘주님, 제게 당신의 길을 가르치소서. 제가 당신의 진실 안에 걸으오리다. 당신 이름을 경외하도록 제 마음을 모아 주소서. 주 저의 하느님, 제 마음 다하여 당신을 찬송하며 영원토록 당신 이름에 영광을 드리렵니다.(시편 86.11~1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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