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마르티노(약 336-397)는 예수님의 ‘열세 번째 제자’, 혹은 ‘갈리아의 사도’라 불릴 만큼 대중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프랑스의 수호성인이다. 많은 성인들이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전설과 구전에 의존하는 것에 반해 마르티노 성인은 술피치오 세베로(Sulpizio Severo)라는 제자가 ‘마르티노의 생애(Vitae Martini)’라는 전기를 남겼기 때문에 비교적 소상히 생전의 행적을 알 수 있다.
마르티노 성인은 336년 헝가리의 사바리아에서 태어났다. 로마제국의 군인이었던 부친이 호민관으로 승진 발령을 받는 바람에 어린 마르티노는 가족과 함께 이탈리아 북부의 파비아로 건너와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부모는 이교도였으나 마르티노는 10살 경 하느님의 뜻에 이끌려 교회를 찾게 되었고, 예비신자가 되었다. 부친은 아들이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으며, 부친의 대를 잇던 당시의 관행에 따라 마르티노도 15살에 군인이 되었다.
성인이 아미안에서 근무할 때 일어난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어느 추운 겨울날 기사였던 마르티노는 성문 앞에서 덜덜 떨며 구걸하던 한 걸인과 마주친다. 마땅히 줄 것이 없었던 마르티노는 칼을 꺼내 자신의 망토를 잘라 그 절반을 걸인에게 주었다. 그날 밤 마르티노의 꿈에 예수님이 나타났다.
“아직 세례도 받지 않은 예비신자인 마르티노가 이 망토로 나를 덮어주었다.”
예수님은 낮에 걸인에게 준 그 망토를 걸치고 계셨다. 그 걸인은 실은 예수님이었던 것이다. 이 꿈을 꾼 후 마르티노는 세례를 받기 위해 날아가듯 달려갔다고 전기는 전하고 있다.
성 마르티노의 일화를 주제로 한 그림들이 많이 있는데 그 중의 으뜸은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지하 성당의 성 마르티노 경당에 그려진 시모네 마르티니의 벽화 시리즈이다. 그곳에는 마치 그림으로 읽는 성인전인 양 성인의 생애를 벽면 가득히 아름다운 벽화로 그려 놓았다.
서양미술사에서 이 그림이 그려졌던 14세기는 단연 시에나 화가들의 황금기였으며, 그 중에서도 으뜸은 시모네 마르티니였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이었던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에 그림을 주문 받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의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시모네 마르티니는 이 장면에서 마르티노 성인의 에피소드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위의 망토 사건을 그리고 있다. 젊은 기사로 그려진 마르티노가 말 위에 앉은 채 헐벗고 추위에 떨고 있는 걸인에게 주기위해 자신의 망토를 장검으로 자르고 있다. 맨발에 다 헤진 천 조각 같은 옷 한 벌을 달랑 걸친 이 걸인은 한 손으로는 망토를 자르고 있고 다른 한 손은 추위에 떠는 듯 목을 감싸고 있다. 배경은 아미안의 성문이다. 꼭 필요한 요소들만 그렸으면서도 주인공들의 캐릭터를 단숨에 알아보도록 그린 것은 화가의 능력이다. 앞 발을 살짝 들고 고개를 뒤로 돌리고 있는 말은 화면에 생동감을 주고 있으며, 공간에서는 입체감이 감지된다. 화가들이 자연과 인간, 그리고 말과 같은 사물에 눈을 돌려 막 관찰을 시작한 무렵에 그려진 그림으로써 순박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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