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 번째 서한에 대하여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내는 네 번째 편지의 발신지는 ‘홍콩’이다. 최양업이 세 번째 서한을 보냈던 요동의 심양에서 홍콩으로 왔음을 알 수 있다.
이번 편지는 동료 김대건 신부가 순교했으며, 동료를 잃은 그 슬픔이 최양업에게 얼마나 큰 아픔으로 전해지는지에 대해 나타내고 있다. 매스트르 신부와 변문에 도착한 최양업은 입국은 커녕 그곳에서 ‘김대건 신부와 교우들이 순교했다’는 기해박해(1839년)의 충격적 소식을 들었다.
이 편지는 또한 최양업이 1839년의 순교자 전기를 번역한 사실을 말해준다. 당시 매스트르 신부도 최양업과 함께 1846년 순교한 8명의 전기를 번역했는데 한국교회사연구소 명예소장 최석우 몬시뇰은 ‘입국을 위한 출발로 인해 시간에 쫓겼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전한다.
■ 홍콩에서, 1847년 4월 20일
“마침내 지루했던 기나긴 포로 생활에서 해방돼 저의 동포들한테 영접을 받으리라 희망하면서 크게 기쁜 마음으로 용약하며 변문까지 갔습니다. 그러나 변문에 도착해 보니 이 희망이 산산이 무너졌습니다. 너무나 비참한 소식에 경악했고, 저와 조국 전체의 가련한 처지가 위로받을 수 없을 만큼 애통했습니다.”
여기서 최양업이 말하는 ‘비참한 소식’이란 동료 김대건 신부가 기해박해 때 순교한 것을 말한다. 그는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기쁜 소식’을 알리고 싶었으나, ‘귀양살이하는 눈물의 골짜기’에서 서한을 올리게 됨을 슬퍼한다.
“특히 저의 가장 친애하는 동료 안드레아 신부의 죽음은 신부님께도 비통한 소식일 것입니다. 그런 중에도 존경하올 페레올 고(高) 주교님께서 프랑스어로 기록해 보내주신 순교자들의 행적을 읽는 것은 저에게 더할 수 없는 큰 위로가 됩니다.”
최양업은 프랑스어로 된 ‘순교자들의 행적’을 자신이 라틴어로 번역했음을 이야기한다. 그는 여행 중 사전도 없이 번역했음을 밝히고 문장도 서툴고 문법에 거슬리는 곳도 많아 너무나 초라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번역은 훌륭했다. 르그레즈와 신부가 몇 개의 오자를 고쳤을 뿐 그의 번역 원고를 그대로 복사해서 로마로 보냈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는 라틴어와 프랑스어에 능통했다.
“지금은 지루하고 긴 여행을 한 후 매스트르 신부님과 함께 홍콩으로 돌아와서, 여기서 하루하루 프랑스 함선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는 그 함선을 타고 존경하올 페레올 주교님께서 명하신 대로 조선에 상륙하는 길을 다시 찾아보려 합니다.”
최양업의 조선 입국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하지만 수많은 난관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극히 가난한 우리 포교지’에 도착하기를 염원한다. “공경하올 스승님께, 예수 그리스도의 성심을 통해 미약하고 쓸모없으며 부당한 아들 조선 포교지의 부제 최 토마스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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