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사회에서 흔히 사용되는 말이 있다. ‘죽여 버려!’ 그렇다. 유영철같은 놈, 강호순같은 놈을 보면 죽이고 싶은 것이 당연한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죽여 버리고 싶다는 감정과 실제로 사형시키는 것은 다르다.
일본에 재판원제도(한국의 배심원제도)가 2009년부터 시행된다. 이제 ‘판사’가 아닌 ‘시민’이 사람을 죽이는 시대가 된 것이다. 증거가 없으면 사형 판결을 내릴 수 없는 법률과는 달리 재판원의 경우 감정에 치우칠 수도 있다. 과연 사형에 관한 판결 문제에 대해서도 재판원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옳은가?
일본 메이지대 대학원 법학과 유학시절 1990~1993년 사형 집행을 하지 않는 일본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일본이 아주 강경파로 돌아서 작년에만 15명을 집행했다. 93년 이후 집행을 했다손 치더라도 1년에 2명 정도였던 것과 비교했을 때, 현재 일본의 현황은 아주 열악하다고 볼 수 있다.
반면 한국은 1997년 12월 30일 흉악범 23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한 후 12년 동안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사실상 사형폐지국가가 됐다. 한국이 이렇게 사실상 사형폐지국이 되기까지는 종교계의 역할이 컸고, 그 중에서도 김수환 추기경을 주축으로 한 가톨릭의 역할이 컸다. 일본의 경우 신도사상이 널리 퍼져있고, 불교도 민속신앙화된 상태며, 기독교 신앙의 유입도 어려워 종교를 전면에 내세워 사형폐지 운동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본에 배울 점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일본의 사형폐지운동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시작한 ‘아래로부터의 운동’이다. 택시기사, 안마사부터 대학교수, 변호사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목적 아래 자발적으로 모여 각자 맡은 일을 한다. 일회성 동원이란 것은 있을 수가 없다. 또 일본에 사형폐지 관련 서적도 8~90권에 달한다. 한국에 있는 사형관련서적은 5권 안팎이다. 그마저도 모두 일본 등 외국 서적 번역서다. 일본의 살해피해자 지원금은 4억이지만 한국은 최고 1000만원이다. 그마저도 조항이 매우 까다롭다.
한국이 ‘사실상 사형폐지국’이 됐지만 법률상 사형폐지국이 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사형집행에 대해 적극적으로 검토하라고 지시했고, 정부 여당은 당정협의회를 열어 “국민 여론이 사형을 바라고 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한국이 사형을 집행하는 것도 간단한 일은 아니다. 강호순 사건으로 사형집행 재개 움직임이 일자 전세계가 주목했다. 사실상 폐지국가 중에 사형을 집행한 나라가 전 세계에 아직 없기 때문이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사무총장 아이린 칸을 비롯한 일본 사형폐지의원연맹, 사형제도 폐지 국제조약 비준을 위한 포럼 90(포럼 90)이 이러한 사형집행 재개 움직임에 반대하는 공개서한을 보내거나 성명문을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강행돼 오던 이러한 움직임은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사형이 과연 범죄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가. 마지막으로 사형을 집행했던 1997년에는 살인건수가 789건이었다. 만약 사형이 진정 범죄억제효과가 있다면 적어도 다음해에는 살인건수가 대폭 감소했어야 옳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789건이었던 살인범죄건수는 1998년 966건으로 한 해 동안 무려 20%나 증가했다. 1977년 살인건수는 506건인데 1997년에는 789건으로 늘어났다. 사형을 집행하는 20년 동안 살인건수가 무려 56%나 증가한 것이다. 사형제도가 범죄를 억제시켜줄 것이라는 존치론자들의 주장도 있지만, 사형제도가 오히려 살인을 조장하는 효과가 있다는 사형의 ‘잔인화 효과(brutalization effect)’도 있다. 범죄억제효과든 잔인화효과든 아직 증명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국가가 인간의 목숨을 놓고 ‘사람을 죽였으니 너도 죽어라’ 식의 인과응보 개념을 들이대면 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아름다운 잣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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