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권유로 천주교 입문
조그만 시골마을 농사꾼의 둘째딸로 태어난 나는 부모님의 인도로 유아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다가 도시의 상급학교에 진학하면서 냉담하게 됐다. 지금의 남편과 결혼해서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도 하느님을 까맣게 잊고 살았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작은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던 해였던 것 같다. 시장에서 우연히 고향친구를 만났다. 하느님을 잊고 살던 나를 너무나 안타깝게 생각하던 친구는 집에 찾아와 기도해주고 묵주, 9일기도 책자를 주면서 열심히 기도하라고 했다. 여러가지 힘들었던 시절이었기에 나에게 하느님은 진정한 구세주요 피난처였다.
전통적으로 불교를 믿는 시어머님과 남편의 반대가 극심할 거라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이끌어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용기를 냈다. 적절한 시기가 되면 말씀드리리라 마음먹고 집에서 한참 거리에 있는 성당을 찾아갔다. 성당 맨 뒷자리에 혼자 앉아서 ‘힘들고 지친 자들은 나에게 오너라’고 하신 말씀을 생각하며 한없이 울고 또 울었다. 퉁퉁 부은 눈으로 집에 돌아와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성당에 다니겠다고 말씀드렸더니 “한 집안에 어찌 두 종교가 있을 수 있냐?”하시며 “다시는 입 밖에도 내지 말라”고 진노하셨다.
내 생애 행복했던 시절
그러나 나는 주일이면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리듯 어느새 성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길거리를 오가면서 ‘주여 임하소서’를 부르며 혼자 마냥 즐거워하는 나를 보고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며 마치 미친 사람 취급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돌이켜 보면 그때가 어쩌면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어느 날 시어머니께서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불교집안에 예수를 믿는 사람이 있어서 어머니가 저렇게 되셨다”고 시댁 식구들이 수군거렸다. 그러나 나는 개의치 않고 시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며 간절히 기도드렸다. ‘하느님! 시어머님을 예전처럼 건강하게 해주신다면 어떤 희생과 봉사도 원하시는 대로 바치겠나이다.’
퇴원하던 날 어머님이 내 손을 꼭 잡으시며 “어멈아! 네 지극정성으로 내가 살았구나! 고맙다” 하실 때 나도 모르게 ‘하느님 고맙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를 외치며 두 눈엔 기쁨과 감사의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구역 식구들의 도움과 하느님께서 내 기도에 응답해주심으로써 마침내 그토록 완고하던 남편이 관면혼배를 허락했다. 두 아이들은 교리공부를 시켜 영세를 받게 하고 학생회 활동과 복사단 활동도 하게 했다. 남편과 시어머니는 대놓고 반대하진 않으셨지만 가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시곤 했다.
구역 일을 하면서 우리가족과 새 가족 찾기에 발 벗고 나서면서도 조금은 부끄럽고 창피하기도 했다. 자기 가족도 제대로 전교하지 못하면서 주제넘게 다른 이들을 전교하러 다닌다고 손가락질 할 것만 같아 주저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시 굳게 먹고 더욱 더 열심히 전교와 봉사활동에 혼신의 힘을 다해 정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갑작스런 실직소식에 망연자실 앞이 깜깜했지만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또 다시 하느님께 매달렸다. 이번에도 나의 하느님께서는 내 간절한 기도에 또 다시 응답해주셨다.
“집에 있으며 시간 있을 때 교리공부 한 번 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의에 남편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해 보겠다”고 답했다. ‘내 평생 남편을 전교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완고한 남편이 이토록 순순히 마음을 바꾸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꿈만 같았다. 이 세상 모든 걸 다 얻은 것 같은 기쁨에 그 자리에 엎드려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무던히도 더웠던 지난 해 여름 성모승천대축일에 많은 사람들의 격려와 축하를 받으면서 세례를 받게 됐다. 한때 하느님 품을 떠나 방황하며 힘든 시기를 보낸 적도 있었던 나이기에 아이들한테는 열과 성을 다해 신앙교육을 시켰다. 어쩌다 학교나 학원 한 번 빠지는 건 용서해도 주일 날 빠지는 건 절대 용납하지 않고 호되게 야단을 치곤 했었다.
남편?자녀도 신앙생활 열심
아이들도 이런 내 뜻에 잘 따라주고 주님의 은총으로 올바르게 성장했다. 큰 아이는 중고등부 교리교사를 거쳐 지금은 교감직을, 작은 아이는 중고등부 교무직과 교사를 하고 있다.
가장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 것은 남편이다. 매주 금요일마다 가족기도를 주관하며 가족의 가정성화에 앞장섬은 물론, 직장에서는 많은 동료들에게 선교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직장과 성당에서 본인이 맡은 일에 항상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당신의 충실한 일꾼으로 거듭난 남편이 한없이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작은 댁에 계신 어머님을 아직까지 하느님 품으로 인도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지만 아들, 며느리, 손자들이 신앙생활 열심히 하면서 건강하게 사는 모습을 보시며 항상 행복해 하신다. 당신께서 주신 무한한 축복과 은총, 사랑, 그리고 당신의 살아있는 말씀을 세상 모든 이들과 함께 나누며 당신께서 마음에 들어 하시는 성가정을 가꾸어 갈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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