펼친 우산에 ‘두두둑’ 빗소리가 한 가득이다. 편안하다. 호들갑스런 휴가 여행이었다면 얼굴 찌푸리며 하늘을 보았겠지만, 오히려 하늘에 감사한다. 추모여행에는 비가 제격이다.
묘소 앞에 섰다. 공기가 한없이 맑다. 고요하고, 경건하다. 마음도 깨끗해진다. 여름의 뜨거움이 어느새 저만치 물러서 있다. 봄의 따뜻함도, 겨울의 깨끗함도, 가을의 고풍스러움도 모두 껴안는, 여름의 평화가 앞에 바짝 다가서 있다.
서울대교구 용인공원묘지 내 성직자 묘역.
한국인 최초의 주교이자 교구장이었던 노기남 대주교와 김수환 추기경을 포함, 사제 64명이 잠들어 있다. 요즘도 김수환 추기경 묘소에는 추모객이 끊이지 않는다. 묘원 관리소 측은 “전국의 성당에서 버스를 전세 내 찾아오는 단체 참배객도 많지만, 나들이 나온 가족도 많다”고 했다.
추기경이 안장된 2월 20일 이후 추모 인파는 10만 명이 넘는다.
경기도 용인 무등치 산자락에 있는 용인 천주교 공원묘원은 1967년 4월 조성됐다. 71만㎡ 부지에 묘역 면적은 34만2745㎡에 이른다.
성직자 묘역은 공원 중심부에서 동쪽을 향한 위치에 있다. 7m 높이의 예수님, 두 손 모은 성모님이 함께 묘역을 내려다보고 있다. 길이 60m의 중앙 통로를 걷다보면 선종 사제들이 옆에서 도열해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김수환 추기경은 성직자 묘역의 맨 앞자리, 1984년 선종한 노기남 대주교의 바로 곁에 안장되어 있다. 0.8평 남짓한 2.76㎡ 넓이다. 비가 내리고 있는데도 봉분을 둘러싼 생화는 생생했다. 김 추기경에 대한 기억도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정진석 추기경은 김 추기경 장례미사에서 “우리 가운데 성자처럼 산 촛불 같은 존재”라며 “사랑과 나눔을 중요한 유산으로 남겼다”고 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김 추기경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잠시 서 있으니, 김 추기경이 말을 건다.
“하느님에게 가장 큰 관심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요, 아울러 이 인간들이 당신 안에 사랑으로 하나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도, 죄 많은 인간을 다시 구원하기 위해 본시 하느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어 오시어 십자가에 죽으신 것도 이 때문입니다. 또한 부활하시어 당신의 얼인 성령을 보내심도 이 때문이고. 교회를 세우심도 이 때문입니다”(1981년 9월 19일 조선 교구 설정 150주년 기념 사회 과학 심포지엄).
묘역을 찾은 한 부부를 만났다. 같은 신앙, 같은 마음을 나눈다는 교감 때문일까. 눈이 마주치자, 자연스레 인사를 나누게 된다. 부부는 한 사제의 봉분 앞에 나란히 서서 30분 넘게 기도를 바쳤다. 아름다웠다.
비가 서서히 그치고 있었다. 멀리 산자락 허리에는 안개가 가득했다. 평화로웠다.
▨ 찾아가는 길
경부고속도로 판교IC에서 15㎞ 거리에 위치해 있다. 분당선 전철역 오리역에서는 승용차로 약 10분이 소요된다. 서울에서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40분~1시간 이내면 대부분 닿을 수 있다.
대중교통 이용 시 분당선 전철역 보정역에서 마을버스(57번)를 갈아타고 종착지인 사기막골에 내리면 된다. 묘역까지 도보 30분 거리. 단, 마을버스는 주일과 공휴일엔 운행하지 않는다. 죽전역에서도 버스를 이용, 묘역에 이를 수 있다.
코레일(031-255-3402)이 수원역과 광명역에서 연계 버스를 이용해 추기경 묘소를 방문하는 참배열차를 운영할 계획이라고 하니까 이를 이용하는 것도 좋다.
※ 문의 031-334-1276
▨ 인근에 가볼만한 성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소년시절을 보낸 골매마실 성지,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남곡리 632-1
※ 문의 031-338-1702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첫 사목지인 은이 성지,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남곡리 632-1
※ 문의 031-338-1702
▨ 지면안내
12면 / 미리내 성지에서 만난 배문한 신부
15년 전 물에 빠진 신자들을 구하고 선종한 배문한 신부를 미리내 성지에서 만났다. 늘 자신을 위한 사랑이 아닌,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이웃에 대한 자선과 선행을 강조했던 배 신부님의 삶을 돌아보며 그 분의 뜻을 묵상해 본다.
13면 / 용소막성당에서 만난 선종완 신부
“도대체 누가 처음 이 방대한 양의 성경을 우리말로 옮긴 걸까?”
이 궁금증의 답은 강원도 원주 용소막성당에서 찾을 수 있었다. 61년의 생애 동안 외곬으로 성경 번역과 씨름했던 ‘말씀으로 산 사제’ 선종완 신부를 만났다.
14면 / 신나무골 성지에서 만난 김보록 신부
19세기 말, 김보록 신부는 경북 칠곡군 신나무골에 머물며 대구대교구 최초의 본당인 대구본당(현 계산주교좌본당) 설립의 기반을 다졌다. 신나무골 성지에서부터 대구대교구 성직자묘지까지, 김보록 신부의 여정을 뒤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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